우리는 오월 속에 있다. 여린 연두는 나날이 번져 가 신록으로 향하고 있으나 우리는 지금 미소가 없는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지나 않은지. 밖은 청신한 오월 풀꽃들이 시를 쓰고 있는데 말이다.

한편으론 우리는 정작 오월에 어찌 반겨야 하는지 모른 건 아닌지 싶다. 이에 김포 구석구석에서 오월에 가장 쉽게 다가가는 방법을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해답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찾았다.

이번 김포 구석구석 쉰한 번째 이야기는 오월 속 우리를 위해, 미소가 없는 그 무엇인가의 앞에만 앉아 있을 그대들을 위해 자세히 보아야 이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런 우리동네 풀꽃들의 군락지를 소개한다.

▮자주괴불주머니_양곡누리공원

숲속, 숲 가장자리, 산기슭에서 자라는 두해살이 풀인 괴불주머니는 색 헝겊을 귀 나게 접어서 그 속에 솜을 통통하게 넣고 수를 놓아 새 끈으로 단 세모 모양의 조그만 노리개를 일컫는데, 꽃 모양이 그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그중 자주괴불주머니는 제주와 전라도 산야에 자생하는 꽃이라는데, 김포에서는 5월에 절정을 이룬다. 이 꽃이 정다운 이유는 일부러 깊은 산을 찾을 필요가 없는 고귀한 꽃이 아닌, 김포 구석구석 어딜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풀이기 때문이다.

자주괴불주머니는 양곡누리공원(양곡도서관 뒤편)에서 군락을 이룬 서식지와 맞닥트릴 수 있는데, ‘보물 주머니’인 그의 꽃말처럼 우연히 찾은 산기슭에서 보물을 만난 듯해 경이롭기 짝이 없다.

▲ 자주괴불주머니,

▮꽃마리_운양동 한라비발디

계란말이, 김밥말이, 꽃말이 공통점은 ‘말이(말리다)’다. 둘둘 감겨있는 형상을 떠올리며 ‘말이’의 의미를 상상할 터인데, 꽃마리는 꽃이 필 때 태엽처럼 둘둘 말려 있던 잎들이 펴지면서 밑에서부터 한 송이씩 피기 시작하기에 ‘꽃마리’ 또는 ‘꽃말이’로 불리게 됐다.

잣냉이, 꽃따지라고도 불리는 꽃마리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꽃이 피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작은, 존재감마저도 없는 꽃이다. 그렇지만 낮은 자세로 유심히 살피면 줄기 끝에서 환히 웃는 꽃마리와 마주할 수 있다. 7월까지 말이다.

이 풀꽃의 영어 이름은 ‘Korean-forget-me-not’이라 하니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의미를 담은 꽃이며, 물망초와 그 모양이 비슷하다. 즉 한국산 물망초가 바로 꽃마리인 셈인데, 운양동 한라비발디 뒤편뿐만 아닌 우리동네 구석구석 어디라도 잊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이다.

▲ 꽃마리.

▮애기똥풀_한강힐스테이트

애기똥풀의 꽃은 노란색이며, 줄기나 잎은 분을 칠한 듯한 흰빛이 돌고 곱슬곱슬한 털이 있으나 이내 사라진다. 줄기에 상처를 내면 등황색(노랑~주황)의 유액이 나오는데, 그 유액 색이 아기의 똥과 같다고 해 붙여진 앙증맞은 이름이다.

시인 장석춘은 애기똥풀의 다른 이름 중 하나인 ‘젖풀’에 끌린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신화를 운운하면서 말이다. 신화에 따르면 엄마 제비가 눈 못 뜨는 아기에게 애기똥풀의 유액을 발라주었더니 신기하게도 눈을 떴다는 이야기다. 꽃말이 ‘엄마의 사랑과 정성’ 혹은 ‘몰래 주는 사랑’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꽃의 절정은 5월부터 시작해 늦게는 8월까지 이어지는데, 수줍어서인지 오월이 한창인 지금, 마산동에 있는 한강힐스테이트 정문 경비실 옆에 숨바꼭질하듯 숨어 하루가 다르게 그 군락을 넓히고 있다.

▲ 애기똥풀 군락지_마산동 한강힐스테이트.

▮종지나물_ 장기동행정복지센터

귀화(歸化)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풀꽃 또한 귀화해 새 이름을 얻어 정착하는 일이 있는데, 그 풀꽃이 바로 ‘종지나물’이다. 종지나물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미국에서 북아메리카에서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로 귀화했다.

종지나물이 태평양을 건너오기 전 이름은 ‘미국 제비꽃’이다. 종지나물이라는 이름은 미국 제비꽃이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그 잎이 종지(작은 그릇)처럼 생겼다고 해 우리네 어른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꽃’이 아니고 ‘나물’로 불리는 이유는 식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지나물 어린 순을 데쳐 나물로 먹을 수 있고, 겉절이, 샐러드로도 손색없다. 꽃전이나 꽃차도 일품이란다.

종지나물 군락지는 마산도서관 인근과 장기동행정복지센터 주차장 뒤편 등에서 만날 수 있다. 꽃말은 겸손, 사랑, 믿음, 성실로, 낯선 땅에서도 겸손과 사랑으로 우리나라를 믿고 성실하게 뿌리내린 오월의 청신한 풀꽃이다.

▲ 종지나물.

▮봄맞이꽃_롯데캐슬 22단지

“참 곱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봄맞이꽃’. 완벽하고 정갈한 자태는 마치 조화를 보는 듯한데, 희고 둥글게 펼쳐진 다섯 장 꽃잎과 그 안에 노란 꽃술이 완벽한 조화가 착시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봄맞이꽃은 이른 봄에 꽃을 피워 꽃말 또한 ‘봄의 속삭임’이다. 혹자는 “작은 봄꽃이라 더 반짝이며, 꽃샘 속에 피어나 더 돋보이고, 무리져 속삭이니 더 정겨우며, 보면 볼수록 더 예쁘고 아름답네”라 감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남쪽 사정이고 우리 김포에서는 오월, 지금이 한창이며, 운양동 롯데캐슬 화단에 군락을 틀었다.

다른 이름은 보춘화, 점지매, 동전초, 봄마지, 후선초, 후롱초라고도 부르지만, 뭐니 뭐니해도 이른 봄에 꽃이 피어 봄이 알리니, 이름으로는 ‘봄맞이’가 제격이다.

▲ 봄맞이�� 군락지_롯데캐슬 22단지 화단.

▮별꽃_마산도서관

수줌은 탓인지, 작은 얼굴 탓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눈에 확 들어오지 않고 숨어있는 꽃이 바로 ‘별꽃’이다. 자잘한 흰 꽃이 밤하늘에 총총한 별처럼 무리지어서 핀다고 해 별꽃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별칭으로는 ‘곰바부리’라 불리기도 한다.

특이한 건 꽃잎이다. 언 듯 보면 꽃잎이 10장 같지만, 사실은 5장으로 꽃잎 아래에서 2장으로 갈려졌기에 10장으로 보일 뿐이다. 또 언 듯 보면 사촌뻘 되는 쇠별꽃과 구별이 쉽지 않은데, 암술대 수가 3개면 별꽃, 5개면 쇠별꽃으로 구별할 수 있다.

별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은 마산도서관 인근이었는데, 도심에서는 어지간히 보기 힘든 꽃이라 한참을 넋을 잃고 보고 또 볼 수밖에 없다. 별꽃의 꽃말은 ‘추억’으로 그 의미는 ‘고독을 사랑하고 성실한 당신이지만, 사랑에는 너무 조심스럽군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순천만국가정원 참고)

▲ 별꽃군락지_마산도서관 인근.

한반도에서 자라는 풀꽃은 약 2700종으로 조사됐다. 김포에서 서식하는 풀꽃만도 흔하게는 민들레, 냉이꽃, 씀바귀, 엉겅퀴를 비롯해 미나리아재비, 나도양지꽃, 정선황기, 여우오줌, 쥐털이슬, 광대나물, 땅빈대 등등 수백 종에 달한다.

그러하니 이름 모를 풀이라고 잡초 취급하지 마라. 무심한 우리가 이름 모를 뿐, 세상 어느 것이든 본연이 아름다움은 가지고 탄생한다. 풀꽃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스칠 땐 모르고 지나칠 지 몰라도, 자세히 보고 들여다 보면 그만의 매력이, 그만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대들도 마찬가지다.

매일매일 지나던 길섶에서, 출퇴근 길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준 후 돌아서는 길에서 풀꽃이 눈에 들어온다면 그 순간이 바로 자신 안에 뭉쳐 있는 강박과 사심이 가라 앉는 순간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사심없이 좋아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모습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태주의 <풀꽃 1>을 소개하면서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가지고 있는 그대들에게 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출처=교보문고

▲ 자주괴불주머니 군락지_양곡도서관 뒤편.

▲ 꽃마리 군락지_운양동 한라비발디 뒤편.

▲ 봄맞이꽃.

▲ 애기똥풀.

▲ 종지나물 군락지_장기동행정복지센터 주차장 인근.

▲ 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