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 없는 마을은 영혼이 없는 마을이다”

소설가 닐 리처드 게이먼(Neil Richard Gaiman, 1960.11.10.~)의 말이다. 그는 “책방이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다. 스스로 마을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영혼까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은 알 것이다”라 했다. 즉, 책은 생각과 감정 그리고 개개인이 갖는 감성을 자극해 한 사람의 영혼을 만들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동네 책방의 근간까지 흔들어 놓았다. 그런데 최근 여러 지역에서 동네 책방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마치 닐의 직언이 통한 것처럼 말이다.

이에 김포 구석구석 쉰여섯번째 이야기는 책방이 있는 마을다운 마을을, 책과 함께 오롯이 나를 위한 쉼이 있는 곳, 우리동네 북스테이 <봄길책방>을 소개한다.

▲ 봄길책방 뜰 안. 뜰 한편에 카라반도 보인다.

■ 오롯이 나를 위한 쉼_북스테이(Book-stay)

쉼의 문화가 변하고 있다. 그저 몸과 마음이 쉬는, 물리적 휴식이 아닌 몸과 마음에 조금 더 집중하는 쉼이 요즘 트렌드로 ‘북스테이’ 역시 이러한 트렌드에서 시작한 쉼 문화의 하나다.

북스테이는 책(Book)과 머문다(Stay)의 합성어다. 고즈넉한 공간에서 오롯이 책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봄길책방>은 이미 북스테이를 찾는 쉼 마니아들에게 입소문이 난 상태다.

국내에서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염하강철책길(평화누리길 1코스)’과 벗하고 있는 <봄길책방>은 김포시 포내리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한다. 책방 복층 구조 독채로 2층이 침실이다. 책방지기는 2층을 다락방이라 소개했는데, 다락방 세모 통창으로 시골마을의 정취와 염하강이 한눈에 들어와 이색적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게 이곳의 장점이다.

또 하나, 조용한 글램핑으로 쉼을 찾는다면 카라반을 추천한다. 넓은 잔디 마당에 딱 1대 있는 카라반에도 역시 책은 빠질 수 없다. 염하강과 시골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잠시 자신을 쉴 수 있게 돕는 최적의 쉼터다.

책과 자연이 어우러져 오롯이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책방에서의 하룻밤. 봄길책방과 함께하는 북스테이다.

▲ 2층 침대서 바라본 풍경. 이 풍경은 <전원생활> 2023년 8월호 표지로도 소개됐다.

▲ 서가가 있는 2층 침실

■ 불편함이 편함으로_무인 책방 '봄길'

<봄길책방>은 12시부터 18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데, 책방지기가 책방을 지키지 않는 날이 다수다. 그런 날에는 ‘무인 책방’으로 운영된다. 무인 책방으로 운영되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데는 불편함이란 전혀 없다.

애초 <봄길책방>의 태생은 여행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부부가 시골에서 여행과 같은 삶을 살고자 마련한 공간으로, 책을 만드는 일을 하던 남편(책방지기1)이 평소 책을 좋아하는 아내(책방지기2)를 위해 포내리 나지막한 언덕에 건물을 짓고, 책방을 열었다.

책방은 열었으나, 이곳저곳 볼일이 많은 터라 책방에는 책방지기가 없는 날이 많다. 책방지기는 없으나 이곳을 이용하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도 <봄길책방>만의 장점이다.

계단에서 2층을 잇는 공간은 책방지기 서가로 책방지기가 소장한 책들을 편하게 꺼내 읽으면 된다. 1층 서가의 책은 족히 2,000여 권이 돼 보인다. 이 많은 책 중 무엇을 고를지가 고민된다면 책방지기가 직접 큐레이팅해 둔 책을 선택하는 걸 추천한다. 단, 1층 서가는 판매용 1층 서가 책들은 판매용 서적들로 조심히 읽거나, 구매 후 읽으면 된다. “주인도 없는데, 어떻게?”라는 질문의 답은 이곳에 와 직접 확인해 보시길.

누구라도 찾아와 어떤 책이라도 읽고, 어떤 형태로라도 내게 쉼을 제공할 수 있는 곳. 책방지기의 부재로 불편함이 편함이 되는 무인 <봄날책방>의 일과다.

▲ 무인 <봄길책방>에서 독서삼매경 중인 어르신.

■ 봄길책방_왜 ‘봄길’인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의 구절이다. 책방지기인 이규대 대표는 이 구절에 의미를 두었다. 그는 길이 끝나는 곳의 길은 결국 ‘책방’이라며, 시인이 읊조린 ‘봄길’은 곧 책방으로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책방과 이웃하고 있는 염하강철책길 또한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곳이 바로 평화누리길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책방이라는 공간으로 길을 찾은 이규대 대표는 <봄길책방>에 대해 쉼과 책을 통한 비움과 채움, 나눔과 이음이 있는 곳이며, 쉬멍과 읽멍(자연을 보며 멍~ 때리고, 책 읽기 좋은 곳) 하기 적합한 공간이라 설명했다.

“첫째, 비움이 있는 공간입니다. 분주하고 바빴던 일상을 비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두 번째, 채움의 공간입니다. 좋은 책을 통해 생각의 채움이 일어나게 하기에 그러하죠. 세 번째, 나눔의 공간입니다. 기부받는 책은 판매해 수익금은 기부자의 이름으로 기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음의 공간입니다. 지역사회 문화콘텐츠의 이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결국 <봄길책방>은 인생의 기나긴 길의 끝은 책에 있으며, 책으로 자신을 비우고 또 채우고, 그 채우는 과정에서 나눔이 이어지고, 그 이어짐으로 또 나를 채울 수 있는 일련의 우리 인생의 길을 염두에 두고 책방 이름을 ‘봄길’로 정하지 않았나 싶다.

▲ <봄길책방> 구석구석.

■ 봄길책방_마을에서 길을 찾다

책방을 열고 진행한 첫 행사는 ‘봄길 플리마켓’이었다. 책방이 마을공동체로 자리 잡고자 기획했으나, 플리마켓 당일이 되자 마을잔치로 이어졌다. 이웃들이 플리마켓에 들고 온 건 시골된장과 고추장, 다육이, 알밤과 고구마, 그리고 수공예품 등이다. 포내리 마을 부녀회에서는 손 큰 음식을 장만하는 등 진짜 마을잔치가 됐다. 또 플리마켓과 함께한 ‘작은 음악회’는 이날의 행사를 감미롭게 이어주었다.

‘작은 음악회’의 여운이 남아서일까. 이듬해는 김포시립도서관과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지원으로 음악이 있는 ‘북-토크’를 이어갔다. 이는 시골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책방이라는 감성적 공간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음의 시간이었다.

올해는 지원사업이 없어 아쉽지만, 그렇다고 두손 두발 다 놓을 책방지기들은 아닐 터. <봄길책방>은 매월 1회 ‘사유의 밤 북클럽’을 운영한다. 마치 밤마실 오듯 책방이 있는 월곶면 주민들을 중심으로 책을 읽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책방지기들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라는 귀띔으로 보아 만족도가 상당한 듯 보인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라는 시 구절처럼 <봄길책방>은 길이 끝나는 곳이던 이곳 포내리에서 길을 찾은 듯싶다. 그것도 봄길을 말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마을공동체와 함께 마을다운 마을을 꾸리고 있는 그들을 격하게 응원한다.

▲ 동창회 중.

ps. 책방지기의 편지.

“책방을 열기 전, 책방을 찾아다닐 때 조용한 시골 마을이 참 좋은데 막상 너무 사람이 없어서 책방이 오래 버티지 못할까 싶어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책방을 열고 난 후의 마음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어느덧 책방은 마을공동체로 흡수되고, 이 안에서 우린 봄 길을 걷는 듯합니다.

‘책방이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전율을 느꼈는데, 이 실천을 바로 저희 부부가 하고 있더라고요. 소박하고 조용한 이곳 포내리에서 말이죠. 마을다운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도 곳곳에 있는 동네책방을 많이 찾아 응원해 주시고, 저희 <봄길책방>도 많이 찾아주세요!”

 -<봄길책방> 이규대 드림-

<봄길책방> 인스타그램 : http://Gyudae Lee (@bomgilbook) • Instagram photos and videos

▲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서가.

▲ 나눔과 이음으로 채워지는 곳.

 

▲ 비움과 나눔, 그리고 이음과 채움이 있는 공간.

▲ <봄길책방> 뜰에서 바라본 석양. 염하를 뒤로하고 하루의 해가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