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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구석구석 40 … 애기봉(愛妓峰)평화롭던 우리, 하나이던 한민족의 모습을 꿈꾸고 있는 곳
양미희 기자  |  suho@cit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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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29  11: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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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72년이다. 72년이라는 세월은 흘렀지만, 쉽게 아물지 알았던 전쟁의 상처는 ‘휴전’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분단‧이산‧실향으로 우리에게 아물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이번 김포 구석구석에서는 우리 김포에서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던 한국전쟁의 상흔을 위로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이들에 잠시나마 묵도할 수 있는 곳, 애기봉(愛妓峰)을 찾았다.

지난 세월만큼이나 너무도 변해 버렸지만, 민족 분단과 이산의 아픔, 그리고 실향의 그리움을 뒤로하고 평화롭던 우리의 모습, 하나이던 한민족의 모습을 꿈꾸고 있을 애기봉. 김포 구석구석 마흔번째 이야기 알고 있지만 혹은 모르고도 있는 애기봉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다.

   
 

■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이전 '애기봉'

2021년 10월 ‘애기봉평화생태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애기봉은 하루 평균 400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김포에서 가장 핫(hot)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예전에도 지금과는 다른 색으로 핫하던 곳이었다.

애기봉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실향민의 슬픔을 달래는 곳으로 365일이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북녘땅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인데, 애기봉과 북한 개풍군과의 거리는 불과 1.4km밖에 되지 않기에 실향민들에는 이보다 더 감사한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실향민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자 1979년에는 전망대가 세워졌고, 이어 1993년에는 망배단도 설치된다.

이에 앞선 1971년. 연말이면 이곳 등탑에 불을 밝혔는데, 애기봉 꼭대기에 설치된 탑은 군사분계선(MDL)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어 트리에 불을 밝히면 23km나 떨어진 개성지역 주민까지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애기봉 트리’ 혹은, ‘애기봉 등탑’이라 했다.

그렇게 2003년까지 매년 연말이면 등탑을 밝혔으나, 등탑에서 비친 불빛이 대북 심리전의 상징이라는 여론이 일며 남‧북 갈등의 원인으로 집중되면서 결국 켜고 끄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2014년 10월 16일 철거되고 만다. 등탑에 첫 불을 밝힌 지 43년 만이다.

당시 군은 노후화로 인한 철거라 밝힌데 이어 애기봉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새로운 안보 견학 시설을 마련할 예정임을 알렸다. 그리고 7년 후인 지난해 10월 애기봉는 평화 의지를 잇는 공간으로 새로 태어난다.

■ 쑥대머리 산에 얽힌 ‘애기설화’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으로 재탄생한 애기봉. 그럼, 애기봉은 왜 애기봉인가?

김포문화원이 2014년에 발간한 「고지도에 그려진 김포의 땅이름」에는 애기봉에 관해 “이 산의 이름에는 이설이 많다. 예절 바른 기생이라는 뜻의 애기봉 또는 무명의 기생이 임을 그리워하다가 묻힌 산으로 여기봉(女妓峰)으로도 불린다”라 기술돼 있다.

김포군지에서도 병자호란(1636년, 인조 14년) 때 평안감사와 기생 애기(愛妓)가 청나라 군사의 눈을 피해 지금의 개풍군에 은신했으나 감사가 붙잡혀 북으로 끌려간 후 애기 북쪽을 보면 울다가 숨을 거두게 되는데, 이를 가엾이 여긴 마을 사람들이 ‘북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이곳 정상에 묻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이곳 지명은 애기봉이 아닌 ‘쑥대머리 산’으로 불렸으며, 애기의 애절한 사연을 달래고자 주민들은 이곳을 ‘애기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女妓)이든 애기(愛妓)든 그리운 이를 만나지 못한 슬픔은 과거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이에 330년 후인 1966년 이곳을 찾은 고 박정희 대통령은 “애기의 한(恨)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1,000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며 친필 휘호를 내렸다.

이 휘호는 지금도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 평화의 종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 “154고지를 탈환하라!” ... 한국전쟁의 상흔

1950년 6월 이후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는 포화 속이었다. 이로인해 전국은 성한 곳 없었으며, 전 국민은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총성과 이곳저곳에서 터지는 포탄에 부모 잃은 아이의 울음소리, 자식 읽은 부모의 오열이 뒤엉켜 있던 시기.

당시 기록에도 나와 있듯 애기봉을 어느 진영이 탈환하느냐에 따라 군세가 보강되기도 하고 밀리기도 했다. 이는 군사요충지였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 근거로 지리적 위치를 들 수 있다. 애기봉은 우리나라 끝자락인 김포반도 월곶면 조강리와 하성면 가금리 경계에 있으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애기봉에서 북녘 개풍군까지 거리는 불과 1.4km. 지리적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남과 북이 이곳을 탈환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 벌어졌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시 이곳의 명칭은 애기봉이 아닌 ‘154고지’. 애기봉이 있는 산봉우리의 높이가 154m에서 단 것으로 보인다.

   
 

■ 대중가요 속 ‘애기봉’

1983년 한국방송공사(KBS)는 이산가족 찾기로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당시 가수 설운도는 ‘일어버린 30년’을 노래해 이산가족의 한을 대변하던 인물로 1985년 지구레코드사는 설운도의 이런 여세를 몰아 설운도 3집 앨범을 제작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잃어버린 30년’이 수록된 설운도의 3집 앨범 SADE A 첫 곡이 ‘애기봉’이라는 점이다.

혹자들은 ‘애기봉’을 노래한 설운도에 대해 “1636년 병자년 12월 12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약해 내려와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청나라 군대에 숨저간 수많은 백성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애기봉으로 한을 옮긴 가수”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일천육백 삼십육년 십이월 병자호란 때 / 그날의 슬픈역사 애기봉아 너는 알지 / 한 맺힌 어린 넋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저 강을 건너 메아리 되어 가는데 / 애기봉아 너는 어이 말이 없느냐♬ -설운도 3집 ‘애기봉’ 中-

   
 

애기봉은 유일한 남‧북 공동이용수역(Free-zone)에 위치해 평화와 화합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단절된 역사와 문화를 이을 수 있는 곳이자 한강하구의 평화 의지가 담기 곳이기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무고한 백성의 목숨과 한국전쟁 당시 154고지에서 목숨을 바치면서 나라를 수호하려 했던 무명의 용사들, 그리고 민족 분단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과 실향의 서러움이 앞서는 건 우리 민족, 한민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개풍군을 사이에 둔 조강은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과 함께 과거 평화롭던 우리, 하나이던 한민족의 모습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닌지… 혹여 ‘애기봉’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 다시 한번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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