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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구석구석 30 … 킹스로드(King’s-road)과거, 왕이 눈물로 걷던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곳
양미희 기자  |  suho@cit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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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8  12: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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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남북을 통 털어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 김포다. 그만큼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고구려 시대엔 검포현, 신라시대엔 김포현이라 불렸다는데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위치한 만큼 외적의 침입도 잦았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임금과 조정은 늘 긴장사태였으며, 고려시대 고종이, 조선시대 인조가 김포를 내 궁궐 드나들 듯 오고갔다.

그 길이 바로 이번 김포 구석구석에서 소개할 ‘왕의 길’, 바로 ‘킹스로드((King’s-road)다.

   
 

■ 고려 고종의 몽진 길 ‘신안리’

지금은 왕권시대가 아니니 킹스로드를 걷기 위해서는 시대를 거슬러야 한다. 옛날 아주 먼 옛날인 고려시대.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지만 후기에 접어들어 몽골군의 침입과 간섭으로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종은 바닷길에 어두운 몽골군을 피해 몽진 길로 지금의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로 향한다. 이길이 바로 킹스로드 첫 번째 길이다.

몽진 길로 신안리릎 택한 고종과 왕족들은 물길이 밝은 사공 손돌의 배에 올라 강화로 천도를 계획한다. 허나, 이곳은 염하 가운데 위치해 있는데, 수로 폭이 좁아지면서 물살이 험하고 소용돌이가 잦은 곳으로 보통의 담력으로는 건너기는 어림없는 곳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던 고종은 급류가 선회하고 나갈수록 길이 막히자 사공 손들을 꾸짖는다. 손들은 암초가 많아 그런 것이라 진언하지만 국난을 당해 의심병을 앓고 있단던 왕에게 처참히 참수 당한다.

허나, 목숨을 잃으면서도 왕에 충성을 다하려는 사공 손돌은 물길에 바가지를 띄우고 그것을 따르라 한다. 결국, 배는 무사히 강화에 도착한다. 이에 왕이 크게 뉘우쳐 손돌의 무덤을 만들고 크게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그때가 음력 10월 20일 경. 사담으로 내려오는 말로는 이때는 겨울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 추위가 시작되는 시기로 이곳에 부는 바람을 손돌풍이라고도 한다.

고려 왕의 길이던 신안리. 아픈 역사와 사연을 가진 신안리는 현재 김포의 관광특구라 할 수 있는 대명항이 있으며, 조선시대 강화 해협을 통해 수도 서울로 진입하려는 외세의 침공을 방어코자 마련한 군영 덕포진이 있으며, 전 국민이 걷고 싶어 하는 길인 평화누리길 1코스로 단장돼 있다.

   
사공 손돌의 묘.

■ 조선 인조의 효심 길 ‘풍무동’

두 번쩨 킹스로드 주인공은 조선 16대 왕인 인조다. 인조야 말로 우리 김포와 참으로 인연이 많다. 흔히 인조하면 남한산성을 떠올리는데, 그에 앞서 김포를 떠올린다면 역사에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가 분명하다.

반정으로 광해군은 폐위되고 왕의 자리에 인조가 오른다. 그때가 1622년.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이다. 왕의 자리에 오른 인조가 제일먼저 한 일은 양주에 있던 부모의 묘를 기름지고 토향 좋은 곳 바로 김포로 옮기는 일이었다. 살아 계실 때 하지 못한 효를 제대로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인조의 효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 원종은 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홍경원이라는 원호를 받는다. 마음에 걸리기라도 한 듯 1632년 인조는 생부 원종을 왕으로 추존하고 장릉이라는 능호도 받게 된다.

또한, 부모의 능을 현재의 김포 장릉산으로 이장한 뒤 부근에 있던 절을 폐사시키고 봉룡사를 창건해 장릉을 보호하게 했다는 기록도 인조의 효심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인조가 부모님을 김포로 모신 지 5년 후에 쫓기듯 김포를 찾는다. 정묘호란(1627‧인조5년) 당시 조선군이 개성으로 후퇴하자 인조와 대신들은 강화도로 몸을 옮기기 위해 도성을 떠나 양철평(현 은평구 녹번동)과 김포 통진을 거쳐 강화로 피신한다.

부모의 묘를 들리고 싶은 자식의 마음을 접어야 했던 인조.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인조반정을 시작으로 역사상 치욕의 한 장면으로 남는 남한산성에서의 삼전도의 굴욕까지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남다른 그의 효심은 역사 그 이상의 가치를 우리에게 전한다.

인조의 효심이 깃든 김포장릉은 현재 대한민국 사적 제20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돼 있다. 김포장릉은 어느 계절에 찾더라도 후회가 없는데, 특히 가을이 익어가는 이즘이 가장 운치있다.

   
김포장릉의 가을.

■ 옛 왕들의 눈물 길 ‘고막리’

부끄러운 일이지만, 옛날 우리나라는 외적의 침입이 잦았다. 그래서인지 조정은 왕이 피신할 비상사태를 늘 준비해야 했고, 그나마 자족 가능한 강화도를 피신지로 삼는다. 염하를 건너야 갈 수 있던 강화도. 왕은 염하의 물때를 기다리기 위해 하룻밤 묶어야 했는데, 이곳이 바로 문수산 자락이다.

문수산 정상은 강화도가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고려 때는 몽고군이,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장수가 강화도를 점령하기 위해 주둔했다. 고종 3년(1862) 병인양요에는 프랑스 해병과 격전을 벌이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문수산 자락 끄트머리에 고막리라는 소박한 마을이 있는데, 옛 통진 관청과 군대 막사가 있어 고막리라는 지명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이는 관청에 필요한 여러 물건을 만들었던 곳인 ’납성골’이라는 옛 지명도 이곳이 관청이 있던 자리임을 증명한다.

지금에 와 옛 모습을 찾고자 하는 건 욕심이지만, 근처에 있는 신도비는 주목할 만하다. 신도비는 여흥민씨 후손인 참찬공 민은 형님의 신도비로 알려졌는데, 1699년 숙종 때 세워졌다고 한다. 이 신도비에 대해서는 조만간 김포 구석구석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지금, 문수산 자락의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으나 왕에게 하사 받았다는 회화나무 한 그루와 수령 200년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 두 그루가 이방인에게 쉼을 청한다.

   
고막리의 느티나무.

김포 구석구석에 있는 왕이 지나던 ‘킹스로드’. 비록 중앙에서 왕을 보필하지는 못 했어도 우리 김포의 역할을 선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우리 김포를 찾았으니 말이다.

어쩜 지금 독자여러분이 밟고 지나는 길이 바로 왕이 지났던 길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김포시민도 왕의 대열에 합류한 셈. 코로나19로 움츠리기보다는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김포 구석구석에 자리한 킹스로드를 찾아 왕이 되어보시길 바란다.

   
신안리 손독목의 거센 물살
   
고막리의 신도비.
   
 
   
 
   
 

 

[관련기사]

김포 구석구석 1...벽화마을
김포 구석구석 2 … '꽃길'
김포 구석구석 3 … 5일장
김포 구석구석 4 …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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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구석구석6 … 옛날박물관
김포 구석구석 7 … 봉성리
김포 구석구석 8 … 하루
김포 구석구석 9 … 해바라기
김포 구석구석 10 … 한남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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