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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구석구석 21 … 김포의 ‘그날’100년 전, 그날의 만세 이야기
양미희 기자  |  suho@cit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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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1  18: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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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KBS1. TV ‘역사저널 그날’. 2013년 10월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200회를 훌쩍 넘기며 매주 일요일 밤 시청자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이 프로그램이 장수하는 비결은 역사가 움직인 터닝 포인트인 결정적 하루를 입체적으로 구성했다는 데 있다. 또 교양과 재미가 있는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출연진의 입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번 그들처럼 ‘그날’을 구성해 보자. 100년전 김포 구석구석에서 일던 만세 이야기를 말이다. 이번 씨티21뉴스 김포 구석구석은 1세기 전, 김포의 그날을 이야기한다.

■ 군하리 장터의 ‘그날’

김포에서 가장 먼저 만세 이야기가 시작된 지역은 월곶면 군하리다. 그날은 바로 3월 22일.

구전으로 내려오는 그날 만세운동은 통진향교 (군하로 288-21)에서 시작했다. 장날이었던 그날은 통진향교 풍화루에 결집한 민중이 면사무소와 통진이청을 접수함은 물론 일본순사들을 무장해제까지도 한다. 그리고 외친다. ‘조선독립만세!’

그날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인물은 김포의 유관순인 이살룸과 성태영, 백일환, 박용희, 조남윤, 윤종근, 최복석 등이다. 이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해 만세시위를 확산시켰으며, 이어 정인교가 함박산에서 횃불시위를 도모한다.

현재 100년 전, 군하리 장터의 그날 만세운동은 통진휴게소가 책임지고 있다. 유적비가 그곳에 있기 때문인데, 휴게소에서 만세운동이 최초로 일던 통진향교까지는 1.6km, 도보로 약 20분 거리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이곳에 기념비가 있을까.

앞서 소개된 함박산이 포인트다. 함박산이 통진휴게소 뒤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어른들조차도 함박산의 존재를 두고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모호한 상태로 이는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가 분명하다.

다행이도 현재 월곶면 주민자치회에서는 100년 전 그날의 인물과 지금의 인물을 연결하기 위한 다각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으로 그날의 함박산의 진실이 조만간 풀리길 바란다.

   
군하리의 '그날'은 통진향고에서 시작해 면사무소를 거처 당시 통진장터에 나온 민중의 가슴을 흔든다.

■ 오라니 장터의 ‘그날’

읍으로 승격한 옛 양촌면은 월곶 군하리의 그날에 이어 김포에서 두 번째 만세 이야기가 깃든 곳이다. 그날은 바로 3월 23일.

지금은 1일과 6일 양곡장이 열리지만, 당시 3일과 8일 장이 열렸나 보다. 이날이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건 2천명이 넘는 주민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라는 점이다.

양촌면 누산리 출신 박충서 외 7인과 대곶면 초원지리 출신 정인섭과 임철모는 시위대 선봉에 서 면사무소로 향하지만, 일본 순사의 총부리에 연행된다.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관 주재소를 포위하지만 이역시 역부족이었다.

이곳 만세운동은 7천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김포의 대표적 만세운동으로 기록돼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도 양곡에 자리하고 있어 선열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현재 3‧1만세운동유적지는 양곡중‧고등학교 건너편(양곡4로)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는 선열들을 편히 모시기 위함이었으며, 정작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은 가람마트 옆(양곡로 532번길)에 너무도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 다달으면 너무도 소박하게 있어 소박한 게 아니라 우리의 소원함이 아닐까 싶어 그저 죄송스러운 바로 이곳이다.

   
100년 전, 양촌 오라니 장터를 가득 매웠을 그날의 주인공들. 지금은 낙엽만이 그들의 함성을 지키고 있다.

■ 신곡리 뒷산의 ‘그날’

김포 만세운동 이야기는 옛 고촌면 신곡리에서 마무리된다. 그날은 바로 3월 24일.

신곡리 뒷산에서 진행된 그날의 만세운동은 경성중등고등보통학교 학생회장이었던 젊은 김정의에 의해서다. 김정의는 김정국, 윤재영, 윤주섭, 이흥돌 등과 이틀간에 거처 조선의 독립을, 김포의 독립을 외친다.

고촌 만세운동 기념비 또한 선열들의 편안한 안식을 위해 신곡리노을공원(신곡리 1106)에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실질적 만세운동은 신곡리에 있는 뒷산이다. 신곡리 뒷산은 당산미와 일출봉으로 더 알려진 옥녀봉이다. 옥녀봉은 현재 고촌읍 풍곡리 소재로 고촌중학교 뒤다.

지리적으로 평야지대인 우리 김포는 유독 횃불시위가 빈번했는데 신곡리 뒷산 만세운동 또한 그러했나 보다. 신곡리 만세운동이 있던 그날 이후 김정의는 체포되고 옥고를 치룬다. 그러나 앞서 월곶이나 양촌의 그들과는 좀 다르다. 김정의는 옥고를 치룬 후 중국 길림성으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이어간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있다.

   
신곡리의 '그날'은 이곳 옥녀봉에 횃불을 지핀다. 이곳의 횃불은 다시 양촌과 월곶으로 이어져 100년전 김포의 여러지역에서 불을 밝혔다.

지난 3월 1일 김포아트홀에서는 1세기 전, 김포의 그날을 기리는 창작음악극 ‘오래된 내일’이 공연됐다. 월곶면 군하리의 그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극중 이야기는 1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 됐다.

이어 김포아트빌리지에서는 양촌 오라니장터 만세운동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만세운동 재현됐다. 이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수천명의 군중이 몰렸다.

그러나 이날 몰린 군중은 과연 100년전 그날을 기리기 위함이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혹여, 100년전 그날의 주인공이 100년 후 유명 가수의 ‘엄지쩍’에 밀린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하지만 김포 시민이라면 자책하거나 걱정할 것 하나 없다. 본지가 김포의 ‘그날’을 다시 조명했으니 말이다.

3월이 가기 전에 위에 소개된 김포의 그날의 장소 3곳을 가족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찾아보자. 100년전 그들의 그날이 넘실대는 봄바람을 타고 여러분을 버선발로 반길 게 분명하니 말이다.

   
양곡중고등학고 건너편에 있는 3.1만세운동 유적비
   
고막리 만세운동의 주역인 옛 월곶면사무소. 지금은 월곶생활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신곡리 노을공원에 있는 3.1만세운동 유적비. 위풍당당한 모습에서 100년전 그날이 떠오른다.
   
옥녀봉에서 바라본 서울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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