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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구석구석 55 … 목안정(木鴈亭)눌재에겐 심리적 안정감을, 대문호들에겐 사색의 공간인 바로 그곳
양미희 기자  |  suho@cit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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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6.19  19: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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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지트’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본디 ‘아지트’는 러시아어 아기트푼크트(агитпункт)가 어원이다. 여기서 ‘아기트’ 부분이 구개음화 과정을 거치면서 ‘아지트’가 됐다고 한다.

예전에는 비밀결사나 공작원들이 비밀 작전 수행을 위해 마련된 소규모 접선 장소를 일컬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아지트는 ‘숨은 장소’라든지 ‘은신처’ 등의 의미였는데, 물리적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만의 공간, 혹은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더 커졌다.

이는 현재를 사는 우리뿐만이 아닌, 과거 우리도 적용될 터. 이에 김포 구석구석 쉰다섯번째에서는 과거 여섯의 임금을 섬긴 조선 초기 실학자인 눌재 양성지의 공간이자 당대 대문호들의 아지트를 소개하려 한다. 눌재에게는 심리적 안정감을, 대문호들에겐 사색의 공간이던 ‘목안정(木鴈亭)’이 바로 그곳이다.

   
 

❙눌재만의 공간, 목안정(木鴈亭)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1415~1482)는 조선 전기 세조 대에서 성종 대 기간에 다수의 문헌과 지도 편찬에 참여하고 다방면의 정책안을 건의한 문신이다. 세조 대에는 당대의 문교·국방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정조 대는 그의 정책적 주장이 큰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관직에 매진하던 1458년 현 양촌산업단지5공원(양촌읍 황금로48번길 87)에 정자를 짓고 ‘목안정(木鴈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양성지 나이 48세로 집현전이 폐지되자 좌보덕(左輔德: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가원 소속 정3품 관직)으로 전임되었던 때로 추정된다.

목안정의 한자 뜻을 살피면 나무 목(木)은 오행의 하나로 방위로는 동쪽, 계절로는 봄, 빛깔로는 청색을 의미한다. 기러기 안(鴈)의 기러기는 정절‧신의‧우애‧사랑을 의미하는 길조다. 마지막으로 정자 정(亭)자는 정자(亭子)라는 의미 외에도 ‘머무르다’라는 의미가 있다.

한자 풀이로 미루어보았을 때, 눌재는 자신만의 공간 목안정에 머무르면서 한 나라에 대한 충절과 선비로서의 정절 그리고 실학자로서의 신의 등을 고민하며, 민족중흥의 꽃을 피울 방법을 찾기 위해 고뇌와 번민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벗과 정담을 꽃 피우던 공간, 목안정

양성지는 이곳에서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던 최항(崔恒:1409~1474)과 서거정(徐居正:1420~1488) 등과 정담을 나누었다고 전한다. 여기서 정담은 정치에 관한 이야기(政談)일 수도 있고, 정답게 주고받는 이야기(情談)일 수도 있고, 세 사람이 솥발처럼 벌려 마주 앉아서 하는 이야기(鼎談)일 수도 있다.

양성지의 벗이자 동료인 최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 초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서거정은 『필원잡기』에서 그의 성품을 두고 침착하고 신중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청백해 40년간 벼슬을 했으나 한 번도 탄핵받지 않았다고 극찬한 바 있다.

서거정 또한 조선 전기 문신으로 학문이 매우 넓어 천문‧지리‧의약‧복서‧성명‧풍수에까지 관통해 문장에 일가를 이룬 인물로 특히 시에 능했다. 실제로 서거정은 이곳 ‘목안정’에서 관직에서 물러나 대포곡(대포리)에서 생활하는 양성지를 위로하기 위해 ‘서거정제양성지대포곡별서시(徐居正題梁誠之大浦谷別墅詩:서거정이 양성지의 대포곡 별장에서)’라는 팔경 시를 짓기도 했다.

이처럼 ‘목안정’은 조선 초기 내놓으라 하는 대문호들의 사색하는 공간, 그들의 아지트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을 등진 후인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목안정’을 중심으로 맺어진 그들의 인연은 안타깝게 소실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역사의 소중함을, 조상의 가르침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민족 아니던가. 김포시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0년 수도권 서북부의 최대 산업클러스터인 김포골드밸리를 조성하면서 옛 ‘목안정’을 복원한다. ‘목안정’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려는 김포시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어머니 자궁과도 같은 눌재만의 공간 ‘목안정’

역사서에 따르면 양성지의 호는 눌재(訥齋)이며 시호는 문양(文襄)이다. 호는 본인이 지은 이름이고, 시호는 사후 나라에서 내려준 이름이다. 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그렇다치고, 그는 왜 자신의 호를 눌재라 지었는가?

양성지가 자신의 호 눌재라 지은 것은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강의목눌근인(剛毅木訥近仁:강직하고 굳세며 질박하고 어눌함은 인(仁)에 가깝다)’에서 가져왔다. 여기에서 ‘눌(訥)’의 의미는 ‘말이 서툴거나 어눌하다’를 의미로 실제로 그는 말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았다.

자신의 단점을 호로 취해 오히려 그것을 극복했던 양성지. 어쩜 그는 어린 시절 말더듬이인 아들을 두고 세상을 등진 아버지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여읜 어린 양성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복형인 양경지였고, 양경지가 살던 곳이 바로 김포 통진, 현 양촌읍 대포리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성지는 김포에 사는 벗 조원희의 집을 찾아와 지은 시를 소개했는데, “고향 땅이 가까우니 응당 술이 있을 것이고… 통진에 자리 잡고 나도 살고파서 술 한 병 들고 친구 짐에 찾아왔네”라 읊조려 김포에 살고 싶은 마음이 절절히 남아있다. 양성지가 관직에 있던 40년간 늘 고향인 이곳을 그리워했음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양성지의 벗 조원희는 여기서 중봉 조헌 선생의 선조다.

   
 

이처럼 아버지를 여읜 어린 말더듬이 양성지를 품에 안은 곳이 우리 김포이며, 이곳 양촌읍 대포리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품으로 안은 이곳을 찾아 자신만의 공간인 ‘목안정’을 짓고 정서적 안정을 취했다. 그리고 여섯 임금을 섬긴 후 이곳에서 만년을 보낸 후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지금까지 양성지의 공간 ‘목안정’에서 그의 생애를 살폈다. 그는 말더듬이라는 신체적 단점으로 인해 자신을 낮추며 평생을 충절과 절의 그리고 신의를 벗 삼았던 살았다. 어쩌면 그만의 공간이던 ‘목안정’은 아지트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동료들과 사색을 나누며 안정감을 찾던 심리적 공간이었을 것이다.

이번 주말, 아니면 언제라도 양성지의 공간 ‘목안정’을 찾아 과거 그를 만나 물어보는 건 어떨까? 고뇌와 번민에 지배받고 있는 나 자신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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