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색채 연구소 팬톤(PATONE)은 매해 연말에 내년을 대표하는 색상을 선정하고 발표한다. 지난해 말 팬톤은 2024년을 대표하는 색으로 봄의 기운을 머금은 말간 복숭앗빛 컬러인 ‘피처 퍼즈(PANTONE 13-1023)’를 선정한 바 있다.

그리고 얼마 전, 팬톤은 2025년을 대표하는 색상으로 깊고 따뜻한 갈색인 ‘모카 무스(Mocha Mousse, 팬톤 17-1230)’를 발표했다. 팬톤은 선정 결과에 대해 조화, 위로, 일상적인 즐거움에 대한 전 세계적인 열망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럼, 올해 그대들의 색은 과연 무엇이었고, 2025년은 무슨 색이 되었으면 하는가? 이번 김포 구석구석은 2024년 우리의 색을 돌아보고, 다가올 2025년의 나만의 색을 선정하기에 가장 좋은 곳, 팬톤도 탐낼만한 매우 특별한 색을 지닌곳 고촌읍에 있는 옥녀봉(당산미)을 찾았다.

▮ 옥녀봉(玉女峰) 설화

지명에는 그 지명에 따르는 사연이 있다. 우리는 이를 설화라고 하는데, 옥녀봉이 옥녀봉으로 불린 데에도 남다른 사연이 있어 나만의 색을 찾기 전 살짝 들춰보자.

옛날 옛적, 아주 먼 옛날. 지금의 신곡4리 마을에는 옥녀로 불리는 여자아이가 살았다. 옥녀네 가족은 옥녀와 옥녀 어머니, 그리고 동생 등 세 가족이다. 옥녀의 어머니는 두 딸을 살뜰히 살폈고, 옥녀와 동생은 이러한 어머니께 깊은 효심으로 보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낮 동네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어머니가 병을 얻게 된다. 약방 어르신은 이 병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며, 특정 지역에서 자라는 약초가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것이라 귀띔했다.

이후 옥녀와 동생은 약방 어르신이 알려준 약초를 구하기 위한 험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얼마나 헤맸을까. 드디어 약초를 발견하게 된 두 사람은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는 기쁨으로 얼싸안지만, 그도 잠시 폭포를 이겨내야 하는 역경과 맞닥뜨린다.

평소 씩씩하던 동생이 먼저 폭포 위로 향하고, 옥녀는 뒤를 따른다. 안전장비 하나 없던 시절. 어린 두 자매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효심은 결국 약초를 깨는 찰나를 맞이한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는지. 약초가 손에 잡히는 순간 발을 헛디뎌 폭포 밑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로 옥녀의 동생은 그 자리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동생의 죽음과 맞바꾼 약초로 어머니의 병환은 완쾌했지만, 원통하고 비통한 옥녀의 마음은 하늘과 땅만이 알고 있을 뿐. 옥녀는 동생을 잃은 슬픔과 그를 막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이내 동생의 뒤를 따르고, 뒤늦게 이들 자매의 사연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폭포 아래 시신을 안장하고 그곳을 ‘옥녀봉’으로 부르게 했다.

▮옥녀봉의 또 다른 이름 … 당산미(堂山尾)

해발 94.5m의 옥녀봉은 김포시의 시작을 알리는 고촌읍에 소재한다. 이곳의 다른 이름은 ‘당산미’인데, 예로부터 당집이 있다고 해 당산뫼(堂薩山), 혹은 당산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또한, 1919년 3월 만세운동의 역사가 스며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 어르신들은 옥녀봉 꼭대기에 올라 도시락을 까먹고는 놀았던 시절을 회고한다. 당시 옥녀봉 꼭대기에는 쓰지 않는 벙커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그들의 유일한 놀이터이자 아지트였다고 말이다.

그러던 1980년대 중반 88서울올림픽 준비작업 중 하나던 김포공항 제2청사 준공 시 활주로 매립에 사용할 목적으로 옥녀봉이 희생된다. 약 40년 전 일이다. 그 후 옥녀봉은 천등고개를 잇는 자그마한 산이 되었다.

혹자들은 옥녀봉은 1980년대 사라졌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지금의 옥녀봉이라 불리는 곳은 당산미에 힘을 보탠다. 그 덕인지 옥녀봉은 오랫동안 여러 공식지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지만, 몇 해 전 당산미라는 이름으로 공식명칭이 바뀌었다.

재미있는 건 당산미에 대한 다른 설이 있다는 거다. 배천 조씨(白川趙氏) 족보에 아가위(산사자 나무 열매) 당(棠)자를 썼다는 기록 있는데, 이로 보아 예전 이곳 주변으로 산사자 나무가 수려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식하고 있던 곳으로 추정해 본다.

▮ 팬톤도 탐낼만한 매우 특별한 색을 지닌 곳 ... 옥녀봉(玉女峰) 

옥녀봉의 공식명칭이 ‘당산미’로 바뀐 후, 공식문서를 포함한 여러 글에서 옥녀봉이 잘못된 표기라 지적한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옥녀봉이든 당산미든 우리의 근간이 서려 있고, 나름의 빛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신념에서다.

신념 중 첫 번째는, 이곳 정상에 서면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그 너머 대한민국 오악(五嶽)인 북한산(삼각산)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을뿐더러 인천 계양산까지 접수할 수 있으니, 94.5m의 낮은 산은 높은 명산에서 찾을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어두운 밤의 장막 뒤로 여명을 뚫고 한강 너머로부터 쏟는 붉은 태양의 찬란한 모습이다. 마치 잉태해 있던 새 생명을 얻은 가슴 벅찬 느낌으로 말이다. 어디 이뿐인가. 남중고도를 지난 태양이 계양산 능선에 닿을 때의 태양 빛의 파장은 열정적이면서도 낭만 그 자체다.

이처럼 태생적으로 남다른 신념을 갖추고 있던 옥녀봉. 아니 당산미. 이러한 이유에서 옥녀봉이든 당산미든 둘이 발산하는 색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써 우리만의 근간을 찾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만의 색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장엄하고 찬란한 그리고 열정적이면서 낭만적인 그러한 색채 말이다.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팬톤은 2025년을 대표할 색을 ‘모카 무스’로 밝혔다. “모카 무스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소박하고, 감각적인 동시에 클래식한 매력을 지닌 색”이라며 말이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과연 2024년에 무슨 색을 추천할 것인가? 또 2025년은 무슨 색이 주류를 이뤘으면 하는가?

일상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그대들이라면 세밑과 새해 시즌인 이즈음, 옥녀봉에 올라 그동안 찾지 못했던 그대들만의 색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편안함과 따듯함 그리고 단순한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모두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색감을 가진 그대들만의 색감 말이다.

이는 글로벌 색채 연구소인 팬톤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아니 발견한다해도 탐낼만한 매우 특별한 색일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