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강과 붉은광장

처음 이틀은 러시아 제1의 도시 모스크바, 그리고 이틀은 러시아 제2의 도시이며 문화예술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다.

학창시설 배운 세계사는 유럽사중심이여서 세계사 속 러시아 역사는 근대 공산주의 체제의 소련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과거 러시아는 아시아 문화권이었지만 앞선 유럽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유럽화 되었고, 강대국 스웨덴,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때론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소련이 가장 먼저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실시했으나 무상복지하면 많은 사람들은 북유럽을 떠올리지 소련을 떠올리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러시아로 이민 온 가이드도 아직 영주권을 받지 못했지만 두 딸은 무상보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 청소부나 교수나 보수가 비슷하고, 직업에 대한 차별도 없다보니 공부는 정말 하고 싶은 학생들만 하고 성적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고 한다. 가을방학을 맞아 크렘린 궁전을 견학 온 학생들의 표정에서 해맑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산주의가 시작된 나라 소련을 생각할 때는 무겁고, 많은 것이 통제된 나라라고 생각했고 러시아 또한 그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나라일거라 생각했는데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도로는 넓었지만 자동차가 많아 시시때때로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렸고, 유럽을 닮은 궁전과 사원 그리고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모스크바의 근래에 지은 오피스 건물은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다.

“추운데 난방비가 많이 나오지 않겠냐?”는 나의 질문에 가이드는 “중앙난방이고, 정부에서 가정과 모든 건물에 난방비를 많이 지원하기 때문에 실내는 춥지 않다”고 했다.

모스크바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려한 샹들리에와 조각 작품, 모자이크 벽화가 아름다운 지하철역이었다. 딱딱하고 무거운 곳 일 거라는 나의 생각과 달랐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는 300년 전에 건설된 계획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300년 전에 만들어진 도시인데 어떻게 이렇게 도로가 넓을 수 있죠?” 나의 질문에
“표트르 대제가 이곳에 도시를 건설할 때부터 여기 도로들은 넓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의 자동차를 상상하고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표트르 대제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8차선, 6차선, 4차선 시원스레 쭉쭉 곧게 뻗은 도로,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야말로 계획도시였다.

300년 전 러시아의 유럽 진출을 위해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늪지대에 이런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했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인들이 아니, 전 세계인들이 표트르를 그냥 왕이 아닌 대제라 일컫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바이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표트르는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수도 모스크바를 떠나 발트 해를 향해 있는 연안의 늪지대인 이곳을 수도로 선택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티브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암스테르담은 작은 섬과 섬 사이를 다리로 연결하고 열악한 환경을 거꾸로 이용하여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크게 발달한 도시였다. 표트르 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의 암스테르담으로 만들려고 했다.

왕위를 계승한지 15년이 지난 1697년 표트르 대제는 많은 사절단을 이끌고 18개월 간 유럽의 선진문화를 둘러보며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와 함께 일하고, 네덜란드의 조선술을 이용하여 배를 만드는데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으로 표트르 대제가 남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럽 순방에서 돌아온 표트르 대제는 공사현장이 잘 보이는 곳에 오두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공사를 직접 점검해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건설된 도시가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 일컫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위치한 곳은 연안의 늪지대. 처음 이곳에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표트르 대제는 수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마침내 성공해냈다.

늪지대 모래 위,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견고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건물들은 3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모습 그대로 보존, 지난 1990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든 건물들은 사원과 군사건물을 제외하고 궁보다 높지 않다. 그래서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단조롭지만 경관계획에 따른 조명 설치로 밤에는 네바강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표트르 대제는 지형적으로 물이 많은 이곳에 도시를 가로지르는 크고 작은 운하 4개를 건설했다. 

300년 전 이곳의 운하는 도시를 물에서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강과 운하에 배를 띄워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0년대에 건설된 계획도시지만 2015년 김포한강신도시를 비롯한 주거공간(아파트), 공원, 수로가 비슷비슷한 대한민국의 계획도시들과는 참 많이 달랐다.

지형의 단점을 보완하고 넘쳐나는 물을 운하로 흐르게 하면서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오랜 기간 공존할 수 있도록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완공단계에 와 있는 김포한강신도시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수도권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조류생태공원, 농수로 물을 이용한 금빛수로 등등 한강신도시의 특화사업들은 얼마나 견고하고 지형의 특색에 맞게 잘 만들어질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표트르 대제처럼 직접 점검해 나가고, 지형을 잘 이용하고, 부족한 것에 대한 대안을 바로바로 세워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한강신도시 특화사업은 별 볼일 없는 시설물에 불과할지 모른다.

조성 중인 김포한강신도시가 300년 이상 아름다운 도시로 전 세계인에게 알려지는 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며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무겁고 딱딱한 사회주의 체제를 연상했던 러시아에 대한 나의 생각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로 가득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를 보고 확 달라졌다. 한 도시의 모습이 그 나라의 이미지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난 더 놀랐다.

이번 공무국외여행에서 모스크바의 아동복지회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농촌협동조합을 방문 할 계획이었으나 여행사를 통해 접촉한 일정이 무산되면서 기관방문을 할 수 없었다.

러시아 사회주의를 이해하는데 기관방문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훨씬 더 풍성한 연수가 되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의회의 공무국외여행이 좀 더 의미 있고 알찬 연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관방문에 관한 철저한 사전계획과 준비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외부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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