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폭력이라는 전염병에 깊이 병들어가고 있다. 걸핏하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른다. 공공시설 파괴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속담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국가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성이 아닌 본능과 힘이 지배하는 원시사회를 연상케 하고 있다.

2009년 1월20일 오전7시,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또한차례 놀라운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한강대로변 재개발 사업 현장에서 철거를 반대하는 일부 세입자들과 전국 철거민연합회 회원들이 건물 옥상을 점거하고 밤새 인화물질과 벽돌을 쌓아 놓고 폭력시위에 돌입하자 경찰이 특공대를 투입해 시위자들을 체포하려는 과정에서 시위자들이 쌓아둔 인화물질에 화재가 발생해 시위자 양회성(58)씨 등 5명이 숨지고 경찰특공대 소속 김남훈(31) 경장이 순직하고 농성자들과 경찰 등 23명이 크게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 국민들의 삶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시기에 게릴라전을 방불케 하는 과격한 농성을 했다는 것도 문제고 경찰의 성급한 진압도 유감이다. 참으로 불행하고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엄동설한에 갈곳없는 일부 세입자들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억울함을 해결하는 방법이 폭력시위자들을 동원하는 길밖에 없었을까?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었을 것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더욱더 안타까운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발생하자 이 현장에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다. 얼굴만 보아도 온 국민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출동한 것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국민들이 당하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같이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 내비친 그들의 언동은 달랐다. 슬픔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국민과 경찰관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정치 공방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지난해에 있었던 국회 폭력사건이다.

2008년12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상정하여 심의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여야가 공방을 계속하다가 급기야는 폭력사태를 야기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쇠망치와 전기톱까지 들고 나와 국회의사당 출입문과 값비싼 집기들을 닥치는대로 부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이같은 폭력사건이 일어난 지가 벌써 일개월이 넘었는데도 폭력을 자행한 국회의원들과 그의 보좌관들은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러고도 국회에 등원해 세비를 챙기고 검찰이 소환을 해도 검찰을 깔보고 어디한번 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필자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참기 어려운 치욕과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국회의원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국가의 법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은 어디까지나 공정해야 하고 사회정의실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같은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법을 만들려고 하면 국회의원들의 인격과 소양이 바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갈등이 심화되고 폭력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 큰 이유는 졸속으로 만들어진 법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욕구를 충분히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가 폭력의 장이 되는 한 이같은 법제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의 격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좋은 법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법이 사회공약으로서의 효력을 발생하려고 하면 그 법을 만든 사람들이 먼저 그 법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법을 준수해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그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국회의원들이 폭력에 관한 처벌법을 무시하고 민의의 전당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폭력행위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때에 따라 목적을 위해서는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할 수도 있다는 암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법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상황논리에 따라 지킬 수도 있고 안지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같은 법은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래가지고야 우리 사회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폭력이 위험한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어떤 유행성 질병보다 더 무서운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연달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또한 자살사건이 일어나면 연달아 자살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본다. 폭력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폭력사건이 일어난 이후 우리 사회에는 집단 폭력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이번에 일어난 폭력사건 역시 국회 폭력사건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특히 폭력이 악성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무엇일까?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불문율이 이미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폭력을 일삼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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