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그 규모와 분위기가 절로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위엄을 보였다. 정면 중앙에는 양옆에서 아기천사가 호위하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는 마리아를 그린 그림이 있고 그 밑에는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와 구원을 기다리는 듯한 이름모를 모습의 애절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객들이 어떤이는 사진을 찍고 어떤이는 기도 하면서 성당을 둘러 보고 있었다.

성당의 외형은 명동 성당 같은 고딕 건물로 뾰족한 탑 위의 십자가는 조금이라도 더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인간의 간절함을 표현한 것처럼 보였고 사암으로 지어 검게 변색된 빛깔은 신비스럽게까지 보여 성령이 임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했다.

빈 시내의 광장에는 일명 삼위일체 탑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 기념 동상이 있었다. 중세 시대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시민의 절반이 사망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세웠다는 이 탑은 전염병의 교훈을 생생히 전달하는 것만 같았다.

일행은 중세 도시의 모습을 한 빈을 빠져나와 오스트리아의 신도시로 향했다.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을 표방한 후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 받을 요량으로 UN산하의 기구들을 유치했다. 그것도 오스트리아에 사무실을 두는 기구에 대해서는 연간 임대료 70원이라는 사실상 무료 유치를 하여 그 대신 국가의 안전을 보장 받는 것이었다.

일명 유엔도시라고도 불리는 신시가지로 가는데는 그 유명한 도나우 강을 건너야 했다. 요한슈트라우스의 월츠곡 ‘도나우강의 잔물결’이 떠오르고 그 음율을 연상하니 도나우강의 물줄기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오스트리아는 도나우강 중앙에 22km에 이르는 인공섬을 조성하여 시민들의 휴식 터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때마침 유럽에서는 드물게도 화창한 햇살이 내려쬐는 날인지라 강변에는 알몸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신도시에 위치한 한국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일행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체코의 프라하를 향해 5시간의 버쓰 길에 올랐다. 오스트리아가 멀어지고 있었다. 음악의 도시, 종교의 도시, 중세의 도시 빈이 멀어지고 있었다.

태어나면 4살때까지 50만원씩의 보조금이 나오고 공영버스 운행으로 버쓰비가 없으며 평생무료 진료와 모든학교의 무상교육, 도리어 대학생이 되면 월 40만원씩의 생활비가 지급되는 복지국가 오스트리아! 가슴에 부러움을 듬뿍 안은 채 유럽의 차창밖 풍경에 시선을 모두우며 장시간 여행을 위한 좌석 등받이에 어깨를 묻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빈을 떠난 버쓰가 시가지를 벗어나자 영화에서나 보았던 광활한 대지가 눈 앞에 펼쳐졌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는 전형적인 초가을 푸른빛으로 빛났고 가로에는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숲 사이로 이따금 주먹만한 빨간 열매를 매단 사과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조금 더 가자 추수가 끝난 밀밭이 내려쬐는 햇볕을 머금고 황금색으로 치장한 채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가 하면 튼실하게 영글어 검은 얼굴을 한 해바라기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비로소 고흐의 불타는 듯한 해바라기 그림과 미루나무 그림 등이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비단 이것뿐이 아니다. 옥수수 밭도 그랬고 포도밭도 그랬다.

드넓은 평원. 이따금 보이는 야생 노루의 한가로움. 풍경화처럼 펼쳐진 붉은 지붕의 유럽풍 전원 풍경. 이름 모를 들꽃들의 하늘 거림. 망망한 대지에 둥굴게 말아져서 버려진 듯 놓여진 건초 더미. 낡은 목조 주택과 버려진 창고. 그리고 쏟아지는 초가을 청명한 하늘과 햇빛 햇빛!  아! 적막 하도록 아름다운 정경을 가슴에 새기느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야 버스는 체코의 프라하로 들어섰다.
붉은 노을이 물들고 있는 햇살아래 중세도시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15세기로 회귀한 느낌마저 들었다.

중국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프라하 외곽의 호텔에 여장을 푸니 밤 10시가 넘었다. 별 4개짜리 호텔임에도 그 크기나 규모에 비해 객실 시설은 우리의 모텔 수준을 넘지 않았다. 서비스 또한 사회주의의 속성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했다.

다음날 우리는 본격적인 프라하 시내 시찰에 나섰다. 관광 명소를 돌아보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사회주의를 벗어나 자본주의를 선택한 체코의 이모저모를 관찰하는데 시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체코는 유럽의 중부 내륙지방에 위치해 있다. 수도는 프라하며 인구는 약 1천30만명, 국토는 한반도의 1/3정도 크기다. 국토의 70%가 평야로 되어 있으며 2차대전 후 소련의 점령 하에 체코슬로바키아로 사회주의 국가 였으나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 독립되었다.

경제 수준은 1인당 GNP 7천불 정도로 우리의 경제 수준에 못미치지만 실제 생활 양태는
무상교육과 의료보장이 잘되어 있어 훨씬 여유롭고 풍족해 보인다. 지난 5월1일부터 EU 회원국이 되어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난1968년 사회주의에 저항하다 소련의 탱크에 짓밟힌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하다.
 
중세 도시 그대로인 프라하 시내는 버스 진입이 금지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발품을 팔아 옛 고도를 둘러 봐야만 했다.

첫 번째 간 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라하 성이었다. 성에는 현재 1천년에 걸쳐 지어진 ‘성 비투스’ 성당과 대통령 궁이 함께 있는데 비투스 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상당 중의 하나다. 프라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성당은 외형적으로는 고딕 양식에 사암으로 지어져 크기와 규모면에서 상상을 압도한다.

성당안에 들어가면 탑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두사람이 간신히 비낄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총 284개의 계단이 나사못 형태로 돌고돌아 96.5m의 탑에 이르게 되어 있다.
이곳에 오르면 프라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프라하 시를 관통하는 몰다우강이 내려다 보인다.

성당내부는 각기다른 채색을한 스탠드 그라스가 둥굴게 내벽을 감싸고 있고 형형색색의 그라스에 반사되는 햇살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성스럽고 웅장한 성당을 둘러 보면서 가슴에 떠오르는 상념은 예술로 승화된 천년전의 작품에 대한 경이로움 뿐만 아니라 종교가 사회에 미친 권위적, 반민중적 역사성 까지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중세 교회는 왕권 강화차원에서 하느님을 적극 활용했다. 높고 웅장한 교회를 짓고 그 안으로 군중을 끌어들여 고개 숙이고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감히 고개들 수 없는 엄숙함. 절대자 앞의 인간은 창조주에 의한 한갓 미물에 불과했다. 바로 거기서 신정일치(神政一致)를 통한 왕권으로 민중을 지배하고 수탈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 안을 돌아보면 절로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그 크고 웅장한 성당에 울려 퍼졌을 장엄한 미사곡이 들리는 듯 하고 성당을 장식한 온갖 조각과 성화가 성스러움의 극치를 맛보게한다.

물론 이모든 것이 신에게 다가가려는 믿음의 자발적 발로일 수도 있고 신을 더욱 신비스럽게 하여 감히 인간이 신을 우러러 보지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그 무엇을 얻어내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성당 안은 스테인드그라스에 새겨진 온갖 색채의 모자이크를 투사한 햇살이 신비스럽게 바사졌을 터이고 그 빛 속에서 인간은 ‘오! 주여!’ 이렇게 탄복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절대 신성과 절대 왕권 아래서 고개 숙여 자기 죄를 속죄 했을 가엾은 민중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않았다.

성당 중앙에 서서 정면을 보면 부활 승천하는 예수의 모습이 새겨진 그라스가 눈에 들어오고 그 좌우와 하단에는 여러 성인이 기도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천년을 두고 지어진 대형 성당은 2천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신비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우러르고 있고 인간은 거기에서 무릎 꿇고 자기죄를 속죄하고 있으며 신은 저 높은 종탑 그 이상에서 그저 침묵으로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다.

등을 돌리면 입구 중앙 상단에 장미문양으로 그려넣은 원형 유리 창이 극찬하는 예술품으로 남아 신을 찬양하고 있다. 인간이 신을 위해 만든 아름다운 정원에 신은 단 한번이라도 왕림 했을까?  인간의 가슴에 벅찬 감동을 주는 저 문양에 도대체 신은 얼마만큼 고마워 했고 어떤 은총을 내린 걸까?

그 꽃 문양 위에 붉은 옷과 푸른 천을 들고 수염을 기른 근엄한 하느님은 내게로 오라는 듯 오른 손바닥은 펴고 왼손은 손등을 보이며 감싸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세상을 내려다 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