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떤 독자로부터 자살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다는 부탁을 받은 일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이 지면을 통해 자살에 관한 문제를 다룬 바가 있고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껏 자살문제에 언급해 온 필자의 글들에 미흡함을 느끼고 다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살 증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한해에만 12,174명이 자살했다. 하루에 33.4명 꼴이다. 자살율로 말하면 인구 10만명 당 24.8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9월8일에 개그우먼 정선희씨의 남편 탤런트 안재환(36)씨가 자기 승용차 안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큰 충격을 받은 바가 있다.

그런데 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10월3일에는 탤런트 최진실(40)씨가 자기 집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파를 타면서 우리 국민들은 놀라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들이 모두 3,40대의 젊은 연예인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안재환씨는 결혼한 지 일년도 안되는 신혼이고 최진실씨는 5년 전에 야구스타 조성민씨와 이혼한데다 아직도 어린 두 자녀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이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도 그러하다. 안재환씨는 사업 실패로 많은 부채를 안고 있었고 최진실씨는 안재환씨와 연관되어 사채놀이를 했다는 사이버상의 루머로 억울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두사람 모두 기독교 신자였다는 점에서 크리스챤들의 충격은 더욱더 클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기독교는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있고 신이 인간에게 주신 것 가운데 최고의 가치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지만 교회가 신앙인들의 의지와 인격 변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더욱 더 서글프다.
 
생명존중의 정신은 기독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공자도 신체발부수지부모라고 했다. 우리 몸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부모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아끼는 것이 효도의 시초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살을 하게 되는가? 이는 비사회적 요소와 사회적 요인 등으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다. 비사회적 요인으로는 유전적인 요소, 기후, 알콜, 마약 중독, 각종 불치병 등을 들수있을 것이다. 사회적 요소로는 가난, 차별, 학대, 억압 등으로 인한 고독, 분노, 우울증과 열등의식 등을 그 예로 들수있을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그의 ‘자살론’에서 자살은 개인의 어떤 성향때문이라기보다 사회적 경향이 개인으로 하여금 자살을 하도록 영향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유형을 네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이기적 자살이다. 이는 사회통합이 약해질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되면 개인의 욕구불만은 커지고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좌절감, 불안감, 고독감 등 부정적 감정에 빠지게 되고 이같은 감정이 우울증을 유발해서 자살을 높인다는 이론이다.

둘째, 이타적 자살이다. 이는 사회통합이 너무 강화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개인의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될 때 이같은 결과가 드러난다고 했다.

셋째, 아노미적 자살이다. 아노미(Anomie)란 기존의 사회체제나 질서가 약화되거나 붕괴되어 각종 범죄가 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쉬운 분위기가 조성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사회가 이같은 분위기에 빠지면 각종 범죄가 증가하게 되고 이혼과 가족해체가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살율도 올라가게 된다는 이론이다.

넷째는 숙명론적 자살이다. 이는 사회통제가 지나치게 과도할 때, 그리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타율에 의해 억압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할 때 숙명론적인 자살이 증가한다고 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심각한 자살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책임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통합이 약해지거나 지나치게 강화될 때, 그리고 사회통제가 약화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강화될 때 자살율이 높아진다는 것이 뒤르켐의 이론이다.
 
그래서 자살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사회통합과 통제기능을 적절하게 조절해서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기가 살고있는 사회에 대한 신뢰감과 연대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에 대한 신뢰감과 연대의식이 무너질 때 그런 사회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은 위기의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고 이같은 위기의식이 고조될 때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하나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입시가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현실이 문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능력도, 소질도 각각인데, 능력과 소질을 무시하고 입시에만 매달리다 보니 억울한 낙오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또한 무엇이나 ‘나는 할수있다’(Yes, I Can)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내가 할수없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무엇이나 ‘나는 할수있다’가 아니라 ‘내가 할수있는 일이 무엇인갗를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참새 한 마리가 한 앗사리온(로마의 소액 동전단위)에 팔리는 것 처럼 인간의 생명이 헐값에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이 중요한 것처럼 삶과 죽음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끝으로 또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자살이 문제해결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삶은 매일같이 문제속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자기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쌓아두고 자살을 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자살이 책임의 회피는 될지 몰라도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앞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쳐다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