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TV방송사들은 2008년 4월부터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명분으로 걸음을 걷지 못하고 쓰러진 채 전기 충격기의 충격을 받으면서 잔인하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미국의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떠들어댔다.

무려 3개월이 넘게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화면을 되풀이 해서 TV시청자들에게 보여줌으로 미국 소는 모두 광우병에 감염된 소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미국 소가 모두 다우너 소가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우너 소라고 해서 모두가 광우병에 감염된 소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인데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다우너 소와 미국 도살장의 살풍경을 보여줌으로 시청자들을 짜증스럽고 지겹게 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장면이 나올 때마다 무조건 TV를 꺼버린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신이 히스테리에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가축을 키워 그것을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가축을 죽이는 장면을 보고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니다. 그것도 병들어 죽어가는 가축들에게 매를 가하는 인간들의 잔인한 행동이야 말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교육에도 좋은 영향을 주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것도 한번 두 번이어야지 똑같은 화면을 3개월이 넘게 계속 보여준다는 것은 시청자들의 감정을 무시하는 TV방송사들의 폭거라고 할 수 있다.

방송사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국민을 선동하기 위해 이같은 보도를 계속하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방송이 국민들의 정서 함양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다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TV방송이 다우너 소를 보도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비인간화 되어 가면서 인간의 잔인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고 민심이 삭막하다 못해 서로가 서로를 잠재적 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 경제 사회적 불안에 휩싸여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증세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 등은 TV방송사들의 다우너 소 보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TV방송사들이 무책임한 방송을 계속하자 정부는(농림수산식품부) 다우너 소가 광우병 소라는 등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MBC PD수첩을 상대로 정정, 반론보도청구소송을 제소했고 이 사건의 심리를 맡은 서울남부지법 1심 재판부(김성곤 부장판사)는 7월31일, 이 사건 선고공판에서 MBC PD수첩이 2008년 4월29일 자에 보도한 내용 가운데 주저앉은 소를 광우병 소처럼 방송한 것은 허위라고 했다.

재판부는 “소가 일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광우병 외에 대사장애, 골절, 상처, 질병으로 인한 쇠약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며 “주저앉은 소를 광우병에 걸린 것처럼 보도한 PD수첩의 보도는 허위이므로 정정보도하라”고 판시하고 재판부는 경기도에서 매년 600여 마리의 소가 주저앉고 있지만 그중 광우병 소는 한 마리도 없다는 사실을 별도로 지적했다.

이같은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소송 당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추이를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다우너 소에 대한 오해는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건강권 못지않게 국민들의 정서도 중요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신영복교수의 ‘강의’라고 하는 책에 나오는 맹자(孟子)와 제나라의 임금 선왕(宣王)이 나누었다는 대화의 내용이다. 

하루는 제나라 임금 선왕이 맹자를 초청해서 맹자의 왕도정치에 대한 고견을 듣기로 했다. 왕도정치는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도덕정치를 의미한다. 제나라의 임금 선왕이 말하기를 자기와 같은 사람도 왕도정치로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맹자의 대답은 한마디로 그렇다고 했다. 이에대해 선왕이 그 이유를 물었다. 이때 맹자 왈(曰), “신은 호홀이라는 신하가 한 말을 들었습니다. 언젠가 왕께서 당위에 앉아계실 때 어떤 사람이 당 아래로 소를 끌고 지나갔는데 왕께서 그것을 보시고 그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고 물으시자 ‘흔종이라는 제사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왕께서 ‘그 소를 놓아주어라. 부들부들 떨면서 죄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나는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러면 흔종의식을 폐지할까요 하자 왕께서는 ‘흔종을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소대신 양으로 바꾸어라’고 하셨는데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선왕이 사실 있었던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자 맹자 왈, “왕께서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측은하게 여기셨다면 어찌하여 소와 양을 차별하셨습니까?” 라고 되물었다. 이때 선왕은 웃으면서 “왜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소와 양을 바꾸라고 했으니 백성들이 나를 인색하다고 하겠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왕은 “내가 소대신 양으로 하라고 한 것은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내가 보았지만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 맹자 왈, “바로 이것이 인(仁)의 실천입니다. 군자는 금수를 어떻함에 있어서도 그 살아있는 것을 보고서는 그 죽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그 비명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군자가 푸줏간을 멀리하는 까닭이 이 때문입니다” 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맹자는 기원전 372년에 태어났고 제나라의 선왕은 춘추전국시대 후반에 있었던 군왕이다. 그 시대의 왕도정치가 23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시대에 적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력이 아닌 문명통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가축을 길러 그 고기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가축의 죽음까지 식도락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비록 우리가 군자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도살장으로 끌려가서 죽음을 맞이하는 소가 해체되어 푸줏간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지켜보면서 고기를 즐겨먹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고기를 즐겨먹는 사람들도 고기를 먹지만 가축의 희생과 죽음은 잊고 싶은 것이다.

잊고싶은 장면을 시도때도 없이 보여주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기 보다 국민의 정서를 해쳐 안정된 생활을 파괴하는 간접적인 폭력으로 간주할 수 있다. 최첨단 문명의 수단들이 이처럼 악용되는 사회에서는 왕도정치도, 자유민주주의 정치도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TV방송사들의 반문명적 행태부터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