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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11일 오전 5시20분 경,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남한 관광객 박왕자(여,53)씨가 북한 초병이 쏜 2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즉사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된 이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관광객 박왕자씨가 군사통제구역임을
알면서도 그곳에 들어갔는지 모르고 실수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주변의 정황으로 보아서는 모르고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고 보여진다.
그 이유로 출입을 통제하는 펜스가 바닷가 30여 미터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 그곳이 군사통제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없었다는 점,
높이 1m 정도의 모래 둔덕 하나가 경계선으로 있었다고 하나 그것이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로 볼 수 없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박왕자씨는
그곳이 군사통제구역임을 모르고 들어갔을 개연성이 높다. 이처럼 현장을 허술하게 해놓고 그곳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무조건 총격을 가해 사살한다는
것은 나쁘게 보면 개미귀신의 덫 같다는 느낌을 주며, 나쁘게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인명을 경시하는 북한정권의 의식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관광객이, 그것도 여성이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못한 채 금지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방치해놓고 실수로 그곳에 들어온 여성의 등 뒤에다
총격을 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잔인하고 비겁하다는 평을 받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불상사가 우발적으로 발생했다고 해도 북한정부는 유족과
남한정부에 정중히 사과하고 남한정부와 함께 사건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한정부의 당연한 공동조사
요구를 거절하고 책임전가에만 급급하고 있어 너무나 실망스럽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현대아산의 책임도 크다고 보아야 한다.
사업자가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관광사업을 해오면서 이같은 위험지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전에 예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것은 지난해 6월4일 도시빈민사회복지선교회 김홍술(52)목사가 이번 사건이 일어난 동일한 장소에 무심코 들어갔다가 북한군 초병에게 발각되어 큰
사고가 날 뻔했던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관광객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돈벌이에만 급급했다는 평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 한국인들의 의식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누구나 금강산이 한국 영토라고 생각한다. 백두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최고봉하면 백두산을 떠올린다. 그래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하며 애국가를 봉창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한반도는 한 나라였다. 말과 글이 하나였다. 단일민족, 단일문화를 형성하면서 하나의 국가를 이룩해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 다르다. 엄연히 한반도에는 두개의 국가가 60여년 동안 존재해 왔다. 우리는 좋든 싫든 북한체제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큰 틀 안에서 백두산과 금강산을 우리의 영토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우리는 금강산이든 개성이든
북한의 어느 곳이나 그곳이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라고 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번에 불행의 주인공이 된
박왕자씨는 이같은 현실을 잊은 채 금강산이 우리나라요 우리 영토라는 단순한 인식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북한은 엄연한 다른 나라다. 북한은 이 지구상 그 어떤 나라보다 입국비자를 받기가 어렵고 또한 입국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지정된
장소 외에는 어디에도 갈 수가 없는 까다로운 타국이다. 이 사실을 잊는 순간 화가 생길 수 있다.
누구라도 홀로 아침 바닷가를 걸으며 금강산과 장전항의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하면서 이곳이 우리나라요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마음껏 느껴보고 싶을 것이다. 이같은 상념에 사로잡혀 한걸음 한걸음 옮겨놓다가 넘어서는 안 될 금단의 선을 넘어갈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환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착각에 빠질 때 똑같은 불행을 되풀이하여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이어서 또 다른 하나의 착각은 북한 주민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북한이 남한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만들어 실험 발사를 해도 설마 그들이 같은 민족인
우리 남한을 해치겠냐고 말한다. 이들에게 6.25를 들먹이며 김일성이 도발한 이 전쟁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의 전사자가 20만 명이 넘었고 이
가운데 미군 전사자가 36,000여명이나 되며 민간인 사상자가 300만 명이나 된다고 말하면 그것은 김일성의 통일전쟁이라고 말한다. 김일성의
남침은 남한을 점령하고 있는 미국을 물리치고 남북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었다는 인식이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군이 동족인 남쪽 사람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막연한 믿음은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가정컨대 박왕자씨 같은 선의의 관광객이 그곳이 군사통제구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북한 인민군도 같은
민족인데 설마 관광을 하려는 나 같은 사람에게 무슨 극단적 행위를 하겠느냐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많은 남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감상적 민족주의가 거기에는 통하지 않는다. 북한 인민군은 우리가 북한 주민을 우리의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한인은 미국의 앞잡이, 노동자들을 수탈하는 자본가 놈들, 그리고
반민족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소마다 부동자세로 서있는 인민군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한국인을 대하는 그들의 눈에 살기가 등등하고 증오심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남과 북의 주민들은 DNA성분으로 보아 같은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리고 거리가 너무나 먼 타국사람들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북한주민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무조건 친북 일변도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위험하다. 우리는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는 매를 든다. 자녀들이 무슨 행동을 하든지 방치하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북한정권이 잘못할
때는 엄중히 경고하고 견책해야 한다. 통일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국가통일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남과 북에는 엄연히 다른 체제가 있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통일만 하면 된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남과 북이 만나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지만 통일이 안 되는
이유는 남한이 원하는 통일과 북한이 원하는 통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실을 덮어두고 단순히 통일세력, 반통일세력 하며 편을 가르는 경우도
중대한 착각이다. 이러한 착각에서 빨리 깨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앞으로도 계속 불행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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