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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존심이 있다. 한국인에게 자존심이 있는 것처럼, 미국인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자존심이란 말이 때로 부정적으로 쓰이는
때도 있긴 하지만, 그 본래의 의미를 취한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자존심이란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존재 가치를
중요시하고 자신의 명예를 존중하는 정신 자세를 말한다.
이같은 자존심은 한 사람 개인의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
나라의 국민은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을 가지고 국가의 명예를 부끄럽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학생은 학생으로서 자기가 소속한 학교의 명예를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 개인 차원을 넘어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 자존심을 지켜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말이다.
요즘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한국인의 자존심과 관계된 문제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를 놓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무시한 측면이 있다. 물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은 누가 다시 말하지
않아도 인정한다.
미국 쇠고기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안전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되어 있고, 지난 정부 때부터 추진해 온 과제인데다가, 수만 톤의 미국
쇠고기를 언제까지나 냉동 창고에 쌓아둘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쇠고기 문제 해결 없이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기 어렵다는 절박감
때문에 미국측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전에 정치권과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꼭 필요했다. 이같은 과정을 무시한데서 자존심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정부도 뒤늦게
이같은 문제점을 인정하고 추가 협상을 해서 새로운 합의문을 내놓은 상태이다. 이런 마당에 언제까지나 자존심 문제를 앞세워 무한투쟁을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좀 더 큰 틀 속에서 자존심과 국익을 함께 생각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것이 우리의 진정한
자존심인지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광우병대책국민회의는 한미쇠고기협정을 성사시킨 한국정부의 대표단을 매국노라고 매도하고
있다. 아니, 언제 그들이 대다수 국민도 모른채 이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었다는 말인가?
미국쇠고기수입협상은 한국정부가 미국의 위협이나 강제력 앞에 굴복한 그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무역협상을 성사시켜 한국의 공산품을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팔아먹기 위한 협상 과정의 한 결과이다. 우리가 미국시장을 포기하고 과거처럼 소나 기르고 미맥농사에만 매달려 5천만
명의 인구가 살 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덮어놓고 우리 대표단을 매국노라고 매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 가지 사안만을 가지고 매국노 운운
하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스스로 상하게 만드는 일이다.
더군다나 시위대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그토록 존중한다면 과거
일제 탄압으로부터 민족의 얼을 지켜 온 언론사의 시설을 파괴하고 쓰레기를 현관에 투척하고 성인남자들이 무리지어 신문사 현관에 소변을 보는 야만적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우리 국민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자존심을 만천하가 보는 앞에서 모욕하고 짓뭉개는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의 자존심이 중요하면 남의 자존심도 존중해야 하고, 우리 국가의 자존심이 중요하면 다른 나라
국민들의 자존심도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2억이 넘는 미국사람들이 아무 탈 없이 먹고 사는 쇠고기를 덮어놓고 광우병 쇠고기니 미친
소니 하는 것은 미국인들에 대한 모욕이다. 한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미국사람들이 한국인은 미친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이라고
떠들어댄다면 한국인들의 감정이 어떨지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한국사람들은 농가에서 소가 병들어 죽으면
관계기관의 지시에 따라 죽은 소를 산에 갖다 묻어두었다가 관리의 눈을 피해 야간에 소 무덤을 파헤쳐 그 소를 끌어내어 해체해서 동리사람들이
나누어 먹기도 했다. 우리는 가난한 시절 이처럼 부끄러운 삶을 살아온 것이다. 우리의 과거가 그러하다고 해서 미국사람들이 한국인은 병들어 죽은
소를 무덤에서 끄집어내어 먹는 사람들이라고 만천하에 떠들어댄다면 우리 한국인들의 자존심은 어떠할까?
지난 5월3일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회장단은 서울 태평로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0년 이상 미주 한국인들이 먹어온 미국산 쇠고기가 경험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서울에 왔다”며 “20~30년간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서 20개월, 30개월 된 소인지를 따져본 일이 없다.
미국에서 안 먹는 쇠고기를 한국에서 수입한다는 것은 오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기를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사는 미국산 쇠고기를
청산가리에 비유하는 것은 불쾌하다”고 했다. 결국 미국쇠고기 수입 반대가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교포들의 자존심까지 짓밟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교포들은 미국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살기가 부끄럽다고 했다.
또 생각해보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은 미국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미국은 물러가라고 외친다. 미국이 언제 어느 때에 한국을 침략했던가? 미국은 일제의
강압통치에서 우리의 해방을 도와주었고, 6.25때는 우리 정부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파병을 결정했다. 그 결과 우리는 그처럼 갈망했던 해방과
자유를 얻었지만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이 땅에서 피를 흘리며 목숨을 잃었다. 이같은 미국을 이제 와서 침략자 운운하는 것은 미국인의 자존심을
짓밟는 중대한 행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언제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과 각료들을 임명한 일이 있는가. 엄연히 한국의 대통령은 한국인의
손으로 뽑고 있다. 일을 제대로 못하는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얼마든지 바꿀 자유를 누리고 있다.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법의
보호를 받으며 반대 의사를 표현할 길이 열려 있다. 그런데도 침략자 운운 하는 것은 미국인과 한국인을 싸잡아 모욕하는 일이다.
자존심은 결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가치이다. 개인의 자존심도 중요하고 국가의 자존심도 중요하다. 그리고
내 자존심이 중요한 만큼 남의 자존심도 존중해야 한다. 그러할 때 자신의 자존심도 존중받을 수 있다. 자기 자존심만 앞세워 상대방의 자존심을
무시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된다. 그것도 집단이기주의에 편승해 덮어놓고 따라서 욕하고 돌을 던지는 무지막지한 행동은 그만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다 존중 받아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정부도, 국민도 모두가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심을 되찾고, 타인의 자존심을 존중하는 가운데서 서로의
이익을 넓혀갈 수 있는 합리적인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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