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부상은 없는데 사타구니가 쓸려 피고름이 나고 고통이 심했어요. 세 번 정도 공황상태를 경험했구요. 그러니까 경승점에서는 후련하다던가 해냈다는 환희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저는 알 수 없이 화가 치밀었어요.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는데."

"그냥 욕이 나올 정도로 제게 화가 나더라구요. 왜 달렸지? 뭐지? 이런 생각이란 것도 없이, 삼일 정도 지나서야 평상심을 찾았어요. 저만 그런가 했는데 많은 주자들이 저처럼 공황 상태를 경험하고 황망해 했다는 걸 홈페이지에서 확인했어요."

개인적으로 질주거리 100m마다 10원씩 불우이웃돕기 성금 적립후원을 약속한 지인들의 뜻을 담아 '사랑을 위하여'란 별도 의미를 부여하고 달린 오병무씨가 소년같은 표정으로 토로한 회고담이다.

모임내 애칭으로 통하는 이들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모여 김포 길을 누빈다. 모임을 '둥지'라 칭하는 이들의 저력은 각종 대회 실적이 입증한다. 지난 4월엔 12명 회원이'100km 대청호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하라는 쾌거로 김포를 알리며 내외에 남다른 동지애를 입증한 바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달려요?" 규칙적인 걷기 운동도 지속하지 못하는 문외한의 질문은 궁색할 수 밖에 없다.

"미쳤죠. 중독이에요. 벌써 다음 대회를 기대하니까요. 본능적으로 극한을 즐기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들은 하나 같이 스스로의 의지로는 말릴수 없는 "중독론"에 공감했다.

이번 대회는 100km 이상 국내 18개 울트라 마라톤 전대회 완주기록 및 3,900km 최다 거리 기록 보유자인 심성기(대한울트라연맹 이사)씨를 비롯해 오병무, 송재홍, 채한석씨가 출전해 모두 완주했다. 코스지도를 이정표 삼아 장장 2일 7시간을 달린 대회다.

"저기 맏형님네 내외가 밥하고 국끓여 나와서 지나는 주자들 다 먹였고, 포인트 지점마다 회원들이 주자들 건강 상태를 체크해줬죠." 동지애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거란다. 공무원, 건축사, 군인, 교수, 회사원 등 각기 다른 직업인들로 구성된 이들은 짬만나면 맴버십을 자랑했다.

대한울트라연맹이 주최한 이번 대회에는 총 156명이 출전해 121명이 완주했다. 100km이상 울트라 대회 완주 기록 보유 1천여명을 회원으로 확보한 대한울트라연맹은 국제육상연맹 산하의 사단법인체로 전국 광역시와 도별 지맹을 갖추고 있다.

"잠의 유혹을 떨치기가 가장 힘들었다"는 오병무씨는 "3일간 같은 맘으로 길위의 날들을 함께한 가족과 회원들의 지극한 응원과, 지인들의 아낌없는 후원이 '포기' 유혹을 물리쳤다"며 공을 돌렸다. 그래서 홈페이지 완주 기록 후기에 "한 장수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하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한 회원의 댓글에 공감이 컸다.

응원 전화에 여지없이 눈물이 앞서던 일, 피고름에 짓무른 사타구니와 발가락 물집의 통증, 자동차들의 질주 소음이 깨우던 길바닥과 파출소 처마밑에서의 도둑잠, 대관령 휴게소까지 밥을 지어온 둥지의 성원을 외면한 공황상태… "왜? 무엇 때문에?"란 의문부호도 잊은 채 넘은 굽이굽이 대관령.

"내가 미쳐가고 있어. 미쳤어" 무의식의 중얼거림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결승점을 눈 앞에 두고 택시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러너도 있었단다.

그랬던 그들이 또 다시 일상에서 건강한 웃음 마라톤의 재미와 마력에 맞장구치며, 이달 말의 '서울 울트라', 내년 6월의'일본 울트라'와 260km'사하라 울트라' 출전을 모의한다. 지독한 중독증세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음이다.

삶의 질과 깊이가 고통의 강도와 상관있다면, 직립 진화를 증명하듯 달리기를 즐기는 인간의 도전의식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것은 아닐까? '도전이란 이름의 전차'를 탄 이들의 건강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