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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살면서 뜻밖의 재난을 당할 때가 있다. 그 재난이 인재(人災)일 수도 있고 천재(天災)일 수도 있다. 재난을 당하여 자기 힘으로
회복이 불가능할 때는 국가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도움이 꼭 필요할 때 도와달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는
일도 쉽지 않지만, 도와주어야 할 사람을 도와주는 일도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금년
여름 들어 몇몇 아시아 국가들은 인재에다 천재가 겹쳐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미얀마의 싸이클론, 중국 쓰촨성 일대의 대지진,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 것인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미얀마는 태풍 나르기스가
지나가면서 아라와디 삼각주 일대를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미얀마 정부는 사망자가 63,000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종자를 합하면 10만 명이
족히 넘을 것이라고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인구 4,776만 명 가운데 집과 일자리를 잃어버린 이재민이 수 백 만 명이라고 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는 국제사회가 원조를 해주겠다는데도 외부의 원조를
가로막고 있다. 도와주려면 현금과 물품만 달라고 한다. 구호인력이 미얀마에 들어오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최근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문을 통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들이라는 강력한 권고에 군사정부도 동의를 했다고 전하고 있지만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군사정부가 지금까지 장기집권을 하면서 사회주의정책으로 정국을 드라이브해 왔지만 지난해의 GDP가 국민 1인당
1,900달러 정도이고 사회 간접자본 투자가 미흡한 상태로 국민들의 삶의 질은 세계 최하위권에 속한다. 이같은 상태에서 미얀마 군사정부가
국제사회의 원조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존심을 위해서일까? 권력보호를 위해서일까? 분명한 것은 국민들의 빵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무능한
군사정부에 대한 저항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들의 생명보다 권력유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쯤 되면 도와주는 일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실정은 어떤가? 지금 북한주민들은 계속되는 식량부족으로 절망상태에 빠져있다고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벗들’의 이사장인 법륜스님은 전하고 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다음 달까지 식량지원이 없으면 20만 내지 3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하면서 6월과 7월중에 식량 20만 톤을 긴급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같은 증언이 사실이라면 1990년대 중반때처럼
250만 명 이상은 아니라도 금년 한 해 동안에 10~20만 명 정도가 굶어죽게 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부시정부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식량 50만 톤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앤드로 나초스 전 미국국제개발처(AID)국장은 5월14일 미하원
재무위원회의 세계식량위기 관련 청문회에서 “북한의 식량난은 도시형 기근형태를 띠고 있으며 사회불안을 유발해 정치적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농촌형 기근이 혼자 조용히 죽어가는 것인데 반해 도시형 기근은 주민들의 고통이 집단 불만으로 표출될 위험이 있다는 논리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북한정부는 남한정부에 도와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주면 받기는 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날마다 이명박 정부 타도를 외치며
남한주민들로 하여금 반정부 운동에 앞장설 것을 선동하고 있다.
북한정부의 이같은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압력이다. 도와주지 않으면 남한주민들을 상대로 반정부 선동을 계속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후회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묵시적
압력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의 양심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정부가 고통받는 민족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족의 양심을 저버린
반민족행위를 하고 있다는 구실을 만들어 비난하기 위해서다.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굶어 죽어가는 국민들이 속출하는 마당에 남한정부의 호의와
협조를 얻어 국민들을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북한주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남한정부를 압박하고 시험하고 있는 북한정부의 처사를 누가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같은 북한정부에 대하여 우리 정부가 어떤 자세를 보일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에
선언한 바 있는 대북지원의 4원칙, 곧 북핵진전, 경제성, 재정능력, 국민합의 등을 고려해서 지원한다는 원칙이 지켜질 지도 의문이다. 어쨌건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퍼주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북한정부에 바라는 것은 진정성과
투명성이다. 우리는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대북정책에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전제조건은 북한정부가 진정성을 보여야 하고 투명성을 약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동족끼리 어려울 때 도와달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려움을 당할 수 있고 어려울 때 상부상조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인간은 상호의존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자기 스스로의 힘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정부가 지금처럼
우리를 위협하지 말고 보편적 인간성의 바탕 위에서 진정성을 보인다면 입속에 있는 밥이라도 내어서 북한동포들을 돕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원이 굶주리고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돌아간다는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투명성 확보없이 무조건 도와주는
것은 북한주민을 돕는 것이 아닌 북한정권을 도와주는 결과가 되어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도와준 물자와 돈이 핵폭탄이 되고 미사일이 되어
되돌아오는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볼 때 북한주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연장시켜주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놓고 또다시 국론의 분열을 겪고 있다.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그것이 정의고 민족에 대한 의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도와주어야 하되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문제는
진정성과 투명성의 공감대가 확보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도와주면서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우리의 선의가 북한주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함이 옳다고 보는 것은 도움 받는 사람의 자존심 못지않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 자신이 비굴함을 느끼지 않는 일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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