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동란 후 반세기나 지났지만 이곳 김포는 아직도 삼면이 군사 작전상 철조망 속에 갇혀있고 곳곳에 부대가 산재해 있다. 산마다 겹겹이 방호 참호가 구축되어 있고 계절별로 기동훈련, 사격연습의 총소리와 탱크의 굉음을 들으면서  김포 반도는 전체가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 없는 전선임을 실감한다.

주민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준전시 체제와 같은 제약을 받았을까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 때문에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면서도 천연의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나는 국군의 날에 접경지역인 애기봉을 아내와 함께 올랐다. 많은 시민들도 나와 같이 이곳을 찾았다. 애기봉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해병 초소가 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출입 허락을 받으면서 비로소 접전지역임을 실감한다. 

순간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김포는 아직도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전망대는 해발 154m 에 위치해 있다. 애기봉은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애첩인 애기(愛妓)의 슬픈 사랑의 일화가 서린 곳이다.

해마다 성탄절이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석탄일이면 연등에 불을 밝혀지면서 북녘땅에 평화와 자유의 빛을 전하는 곳이다. 지금은 전망대가 들어서서 국민 안보 교육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1993년 실향민을 위한 망배 제단이 세워져서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있다.

저 멀리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가을볕에 무르익은 그 황금 들판과  중간중간에 무리지어 들어선 하얀 아파트 군이 함께 어우러져서 동화의 나라처럼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정말 아름다운 김포라고 생각했다.

김포의 트레이드 마크는 역시 넓고 푸른 들판이다. 그 옛날 서울시 강서구, 양천구 일원과 공항까지 포함되었을 때는 얼마나 넓은 들녘이었을까? 구중궁궐 임금님이 말 달리고 활 쏘던 광활한 들판이었다고 했다.

구부러진 산길을 쉬엄쉬엄 중간쯤 오르니까 붉은 글씨로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라는 큼직한 간판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불굴의 애국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흥겨운 노래 소리와 넒은 주차장, 음식점과 기념품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산아래 엄한 초소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여기가 최전방 전선이라는 느낌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 추석 절기라 관광객을 위한 배려인 것 같았다.

휴게소 뒷쪽으로는 애기봉 전망대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전적비가 서 있다. 전망대로 오르는 초입, 마치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 같은 기념비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촬영 장소'. 둘러서서 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이 영화는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한 병사들의 사연을 그리고 있다. 그리운 모습은 간 곳 없고 전쟁이 남기고 간 아픈 상처만이 남아 있는 고향. 인민군에 붙잡혀 전 가족이 죽기도 하고 형제끼리 적군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각각 전쟁의 아픔을 나눠 가진 부대원들은 비극적 운명을 걸고 치열한 전투에 임하지만 중공군에게 패하여 영영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곳의 전적비는 꽃다운 영혼을 조국수호의 제단 위에 바친 피끓는 젊은 용사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그분들이 바로 우리의 부모요 형제인데 우리는 지금 얼마나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는가.

전쟁이란 얼마나 무모하고 비참한 것인가. 그 시절을 겪고 살아남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전쟁에 대한 한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겠는가.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원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족애와 공산주의를 혼돈해서는 결코 안된다. 공산주의자들은 반세기 동안 줄곧 자유와 평화를 내세우면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김신조 일당을 내려보냈고 아웅산 사건을 일으켰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칼(KAL)기 폭파까지 끝까지 공산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남북철도가 이어지고 개성공단이 준공되고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지니까 곧 통일이 다 되어가는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물론 전쟁 억제나 통일을 위해 남북의 화해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통일은 대등한 경제적, 정치적 여건의 성숙이 관건이다. 남북이 합의해도 통일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주위의 강대국이 트집 한번 잡으면 어떻게 정세가 변할지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능란한 국제 외교와 국가의 중대사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정치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은 역사적 교훈을 잊는 것이다. 16개국의 우방 국가가 참전하여 4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아군 사망자수만 23만명, 실종자수는 29만명에 달하고, 인민재판으로 억울하게 죽은 학살자 수는 12만명이나 된다.

40여 년의 일제 강점기를 재조명하고 역사적 오류를 청산하려 한다면, 이 68만명의 비극적인 이 전쟁 희생자에 대한 규명과 청산은 어떻게 것인가?

역사는 정의보다는 힘에 의해 재단됐다. 하더라도 역사는 돌아보는 것으로 족해야지 회귀해서는 안된다. 위험하고 끝이 없는 전쟁이 될 것이다. 보복은 보복을 낳을 뿐이다. 역사는 붓으로 쓰는 것이지 칼로 쓰는 것이 아니다.

국군 창설의 달을 맞이하여 자유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수많은 애국 영현들과 '돌아오지 않는 해병' 앞에 마음 깊이 경배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