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사정이야 둘째 치고 프로야구의 개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습니다.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낭만을’이라는 멋진 구호와 함께 여섯 개의 팀으로 시작한 프로야구의 역사는 벌써 20년도 넘었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팀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고 쉬는 시간이면 전날 본 경기중계방송 이야기로 떠들어대곤 했습니다.

어른들이 장래의 희망사항을 물어보면 씩씩하게 프로야구 선수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미래의 프로야구 선수들이 골목마다 넘쳐났습니다. 정말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낭만을 준 프로야구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프로야구도 순위를 매겨야 하는 기록경기였습니다. 더군다나 야구는 기록의 경기라는 말처럼 경기 하나하나가 기록으로 남겨졌습니다. 프로야구 원년 우승은 22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박철순 투수의 활약에 힘입어 OB 베어스가 차지했습니다.

1등이 있으면 당연히 꼴찌가 있는 법, 삼미 슈퍼스타즈가 프로야구 원년 꼴찌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프로야구 원년 꼴찌인 삼미 슈퍼스타즈 팀의 이야기입니다. 꼴찌 팀에서도 패전 처리 전문 투수인 감사용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프로야구 원년 전기 10승 30패, 후기 5승 35패라는 엄청난 기록을 보유한 삼미 슈퍼스타즈 팀에서 진 게임에 마무리로 내보낸 투수가 바로 감사용입니다.

팀의 다른 선수들처럼 처음부터 운동을 했던 선수도 아니고 철공소 주임으로 일하다 공개 모집을 통해 프로야구선수의 길에 들어선 감사용은 통산 성적 1승 15패 1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도 대단(?)해 보이지만 삼미 슈퍼스타즈 팀이 세운 다른 기록에 비하면 새발의 피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팀이 연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OB 베어스 팀의 박철순 투수는 20연승 기록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박철순의 20연승 제물이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 팀이었습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선발로 나가고 싶어 하던 감사용의 첫 출전에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은 한마음이 되어 팀의 승리, 아니 그의 승리를 위해 뜁니다. 박철순의 20연승을 보러 온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감사용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1등, 혹은 승자만을 기억합니다. 안타까운 2등조차 사람들의 기억에선 쉽게 잊혀집니다. 하물며 꼴찌 따위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2등이 있어야 1등이 있고 패자가 있어야 승자가 있다는 진리는 승자들이 패자들에게 섣부른 위로를 하기 위해 하는 말이 되곤 합니다. 하긴 승자만을 기억하기에도 세상은 충분히 복잡하고 험난한 곳이긴 합니다.

상대를 꺾어야지만 내가 이길 수 있고 상대를 밟고 올라섰을 때에야 웃을 수 있는 게 현실이고, 패자에게 웃어줄 수 있는 여유는 승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패자들과 꼴찌들 덕분에 유지되고 돌아가는 게 아니던가요? 단 한 번의 승리에 목말라 하는 패전 처리 전문 투수가 20연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선발투수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면 지나친 걸까요?

오로지 야구만을 생각하며 밤늦게까지 최선을 다해 연습을 하는 선수라면 승리여부를 떠나 이미 훌륭한 프로선수라는 데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겁니다. 판에 박힌 말 같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수퍼스타 감사용>은 프로야구 원년 꼴찌 팀의 패전처리전문투수 감사용에게 바치는 영화이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영화입니다. 자기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이미 승패를 떠나 훌륭한 선수니까요.

컬트야구단이라고까지 불리는 삼미 슈퍼스타즈가 요즘 뜨고 있습니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보거나 인터넷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에 관련된 일화들(주로 엄청난 기록들에 관한 이야기)을 찾아서 보고 있자면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엉성한 폼으로 골목길에서 공을 던지던 모습과 야구 중계를 보면서 응원을 하던 그 날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