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오후나절 모처럼의 휴식시간에, 아내와 둘이서 길을 나섰다 마주친  텃밭을 보며 든 생각입니다.

도로변 옹벽 위, 잔디가 돋아나야 할 자리가 밭으로 일구어져 채소가 자라나고 있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게 됩니다.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놀려두지 않으려는 부지런함에 혀를 내두르다가도 공공의 용지에, 그것도 시민의 안전과 관련되어 있는 부지를 이용하는 몇몇 주민의 용기 아닌 용기에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바야흐로 여름을 향해 치닫는 봄날의 끝 무렵 입니다. 모내기를 끝낸 주변 논들이 검은 흙더미 논둑사이로 푸른빛을 엷게 깔아 놓으며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나서자마자 논둑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입니다. 시기별로 다양하게 옷을 바꾸어가며 계절의 전령사 역할을 해주는 자연의 시계가 바로 논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풍족하니까 기분이 좋니?’

모판에서 논으로 이사와  얼마 전에 자리를 잡은 듯, 아직은 연약해 보이는 모들을 향해 말을 건네 봅니다. 

입주식을  끝낸 후 질서정연하게 도열하여 논두렁의 물을 흠뻑 들이마시고 있는 어린 모들이 마냥 귀엽기만 합니다. 마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앞으로 나란히!’라는 구령소리에 맞추어 약간은 삐뚤삐뚤한 모습으로 서있는 새내기 꿈나무들을 보는 듯 합니다. 지난 겨울 황량한 모습으로 찬바람을 맞이하던 이곳에, 언젠가부터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소리소문 없이 어린 모들이 이사를 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봄바람에  하늘 하늘 춤추는 가녀린  줄기가, 황금빛으로 변하고 알갱이가 영글게 될 올 가을에 , 이 주변은 또 한번의 마법에 빨려들 것입니다.

벼멸구와 같은 병충해는 물론이요 홍수나 가뭄이라도 밀어닥치면 그들은 존립자체를 놓고 힘겨운 고비를 넘겨야 할 것입니다.

물은 그야말로 모에게는 생명수입니다. 모판에서 자란 어린 줄기가 논바닥에 뿌리를 굳게 내리기까지 물은 생명의 발판입니다.

이땅에 모내기법이 도입된 것은 고려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옮겨심기 농법’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국가적으로 여전히 금지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칫 봄가뭄을 만나 물이라도 부족하면 모내기법은 농사에 치명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수확이 많고 노동력이 적게 드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많았음에도, 대책을 마련해주기 보다 금지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던 당시의 조정관료들의 모습에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의 21세기 현대사회에서, 관료들의 모습은 그때와 비교해 얼마나 변화발전이 있을까?’

혼자서 공허한 질문을 논둑사이로 던져봅니다.

요즈음 밤이 되면 이 주변은 논두렁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에 귀가 따가울 정도입니다. 똑같은 소리인데도 인간이 토해 내는 소리와 자연만물이 뿜어내는 소리는 그 느낌도 다릅니다.

‘밤만은 자신들의 시간이니까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훈계하는 듯 아파트 주변 개구리들의 합창은 그칠 줄 모릅니다. 어찌보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이곳까지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인간들을 향해 소리치는 애원일지도 모릅니다.

“아빠, 저 별들은 무슨 풀로 붙였길래 저렇게 하늘에 잘 붙어있어?”

언젠가 저녁시간에 개구리 울음소리에 이끌려 창밖을 내다보던 딸아이가,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던진 물음이 생각납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굳건히 잘 자라렴’

흔들림없이 밤하늘에 터를잡고 세상을 응시하는 별들처럼, 저 모들도 굳건히 뿌리를 내려, 황금열매의 결실을 맺길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