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들으면 악기가 연주한다기 보다 사람이 대화하는 게 아닌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금세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답니다.

요요 마, 오프라 하노이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애인과 밀어를 나누고 있는 정경이 눈에 비치는 듯 합니다.

첼로가 특별히 계절을 타는 악기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플륫이 낙엽 숲의 서늘한 습기를 느끼게 한다면 첼로는 곡식에 알을 배게 하는 햇살의 부드러움을 연상케 합니다.

독주곡, 실내악곡, 협주곡 어느 형태로든 첼로는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전해 줍니다. 아다지오나 사르방드에서 표현되는 '비장감' 조차 그렇게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마치 달관의 경지를 말해주는 듯, 법어처럼, 산상 설교처럼도 들립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성직자 분은 바흐의 무반주첼로조곡을 성경으로, 한 스님은 불경으로 말씀하십니다.

영혼의 심연을 울리는 첼로 음악 세곡을 소개합니다.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Uncompanied Cello Suite BWV.1007-1012) 천의무봉(天衣無縫). 단선율이 낼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춤곡'이라는 표제는 음의 교감을 보다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또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총 여섯곡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곡마다 알르망드(Allemande), 쿠랑트(Courant), 사라방드(Sarabande), 지그(Gigue) 등 네개의 기본 춤곡 위에 가보트(Gavotte), 부레(Bouree), 미뉴엣(Minuet) 등이 첨가된다. 바흐는 유려한 아르페지오와 단선율 악기를 화성적인 악기로 격상시킨 더블 스토핑(Double Stopping;중음주법)을 시도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기교를 이뤄냈을 뿐 아니라 숭고하기까지 한 깊이를 완성했다. 카잘스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이 곡은 음의 농담, 장식음이나 빠르기 등의 주문이 없어 연주자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도 감상의 즐거움을 준다. 여러 대가들이 필생의 명연주들을 남기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고악기의 단아한 울림과 치밀한 균형감 면에서 안너 빌즈마(Anner Bylsma)의 1992년 소니 녹음을 추천한다.

브람스 첼로소나타 2번 F장조(Sonata for Piano & Cello No.2 in F major Op.99)    "스스로 안으로 돌아가는 천성을 지닌 작곡가"라는 만디쳅스키의 말처럼 실내악은 브람스가 음악을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적합한 형식이었다. 브람스의 실내악 작품은 단 하나의 음표도 의도되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치밀함으로 가득 차 있다. 첼로 소나타도 이러한 브람스의 어법이 그대로 투영된 낭만주의 실내악의 최고 정점에 서 있다. 특히 2번은 만년의 삶의 관조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사색의 숨결이 너울댄다. 1번에 비해 스케일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무엇보다 느린 악장에서조차도 원숙한 대가의 영혼이 발산하는 에너지가 충만하다. 1악장의 격렬한 생동감과 폭넓은 동기는 혼돈의 세기에 엄격한 고전주의자가 갈등할 수 밖에 없는 고뇌가 전해 오고 2악장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클라라 슈만과의 애틋하고 절제된 연모의 정이 느껴진다. 첼로소나타 2번은 브람스가 54세 가을에 스위스 툰 호숫가에서 작곡했다.

베토벤 첼로소나타 3번 A장조 69(Cello Sonata No.3 in A major op.69) 바흐의 무반주조곡에 빗대어 신약(신약)으로 칭호가 붙은 곡이다. 탄탄한 짜임새와 기품높은 선율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이 곡이 첼로를 피아노와 대등한 위치에 놓고 작곡된 최초의 소나타란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첼로가 비로소 넓은 음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피아노의 분방한 연주에 대항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첫 악장은 한 고독한 산보자가 인생과 예술에 대해 사색에 잠겨 천천히 들판을 거닐고 있는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 자연은 그에게 넓고도 너그러운 품을 제공한다. 베토벤은 청각을 완전히 상실하기 전 숲과 언덕 등 자연에 대한 찬미를 여러차례 피력한 바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신비를 이상화한 것이 교향곡 6번 <전원>이라면 첼로소나타 3번은 그것의 에필로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1악장, 첼로가 1테마를 연주한 후 피아노가 받는다. 2테마는 피아노의 두음과 첼로가 3성의 대위법으로 연주된다. 전체적으로 밝고 희망찬 2악장에 이어 3악장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힘차게 끝이 난다. 느린 악장이 없는 대신 3악장 앞에 아다지오의 짧은 서주가 있고 그외에는 전통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