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잘 다녀오세요.'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추석에는 2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다고 한다. 실로 엄청난 숫자다.

추석이  무엇이 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가? 내 어릴 때만 해도 이런 일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농업을 주로 하는 농경사회였기에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청난 대이동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현대사가 만들어낸 새로운 양상의 민족적 문화 행사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막중한 시련을 연달아 겪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분단, 전쟁, 정치적 분열과 혼란 등이 이어졌다. 국토는 피폐해졌으며 일자리는 부족했다. 외국에서는 한국을 희망이 없는 나라라고까지 평가할 정도였다.
      
그 시기만 해도 '농자는 천하지대본'이 될 정도로 농업이 모든 산업의 근간이었다. 농촌의 안정없이는 나라의 발전도 안정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국가의 재원은 부족했고 정부 혼자는 농촌의 발전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농민의 각성과 노동력 투하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오랜 가난과 소외에 지쳐 생활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의욕을 갖기 힘들었다. 아니 자신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 조차 품기 어려웠다.

이에 60년대 초에 당시 대통령이 농촌개발에 대한 강한 욕구와 집념을 대내외에 천명하면서 시작된 것이 '농촌 새마을운동'이었다. 최고 통치자의 농촌에 대한 최우선적 관심은 농민들을 격동시켰으며 발전의 크나큰 에너지를 끌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지난 40여 년은 역사 이래 어느 때보다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일구어 낸 시기가 되었다. 서양의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한국의 산업화의 혁명이다.

'새마을운동'은 무엇보다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이다. 최소한 사람답게 먹고, 입고, 안전하고 편안한 집에 살자, 병이 나면 제대로 치료하고 아이들은 제대로 교육시키고 도시가 부럽지 않는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자, 이런 운동이다.

이 운동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동네가 잘 살고, 우리나라가 잘 살자,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정직하게, 남에게 의존하거나 남을 짓밟고 올라서거나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고 해내자는 순수한 자율운동이었다.

그것은 '가난은 숙명이다'라는 뿌리 깊은 체념과의 싸움이다.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도우려는 운동, 매사를 주인의식을 갖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운동, 즉 공동체의 발전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정신적 보람과 가치를 찾는 정신개혁 운동이기도 하다. 그것은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정신을 만들어 낸 무적의 신화가 되었다.

그리하여 농촌에서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곧 도시의 직장, 공장, 도시 새마을운동으로 밀물처럼 번져나가 범국민적 운동이 되었고 나라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새마을운동이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농촌은 공동체의 결속력이 강하고 노동의 유연성이 컸기 때문이라는 데 있다. 이로써 빈한한 농업국가가 고도 산업국가로 탈바꿈 할 수 있었다. 노동의 경직성이 산업을 얽매는 오늘날 새마을운동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농촌은 정신적으로 실질적으로 근대화의 산업화의 기적을 일구어 낸 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농촌은 젊은이는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이 부지기수로 문을 닫았으며  고도의 유적처럼 4H운동의 팻말만 동구밖에 남아 그때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농촌의 번영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인가.

이제 추석은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농민(離農民)의 한풀이 행사로만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4,50년을 지켜온 이농민의 세대가 끝나면 농촌을 지키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형제 자매를 만나며 햇곡식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명절이 이어질지 의문이다.

추석은 향토와 국가를 사랑하며 전통을 중히 여기는 우리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며 정신적 유산이다. 이 '문화 행사'는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농촌을 아름답게 가꾸고, 그와 같은 정신 운동이 다시 일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극심한 경제적 빈부 격차로, 세대간·계층간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단합시키고 날로 옥죄어 오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며 남북통일을 이룩하는 힘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