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계에서 강화방향으로 국도를 타고 달리다 시청을 지나 나진검문소가 나오고 거기서 약 1km쯤 더 달리면 오른쪽에 월드 아파트가 모담산을 등지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다.

아파트 들어가는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2차선 꾸부렁 길을 쉬엄쉬엄 들어오면 현대 아파트 정문을 지나 양촌면소제지 쪽으로 가는 길목 도로 양쪽에 포도밭이 즐비하다.

도로 옆에는 농가는 아직도 띄엄띄엄 고색 찬연한 옛 그림자가 서려있어 지금도 굴뚝에서 밥짓는 연기가 올라 올 것만 같다. 농가의 모습을 보면 옛 고향 향수에 가슴이 아리다…

포도재배 농가들이 도로변에 손님맞이 원두막을 짓거나 포장을 쳐서 간이 점포를 놓아 포도와 포도즙을 직접 팔고 있다. 지나는 길에 차창만 열어도 진한 포도의 단 냄새가 젖어 온다.

차가 멈춰 서면 싱싱한 포도알을 뚝 따서, '안 사도 좋으니 맛이나 보라'고 입에 넣어 준다. 촌부들의 순박하고 욕심 없는 얼굴에서 한국인의 원초적 심상을 그려본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이들에게 법이 왜 필요할까, 그 정성에 감동하여 몇 상자를 사들고 집으로 오면서 그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물질 문명. 그러나 이기심만 증폭되어 사랑은 마른 스펀지처럼 고갈된 세상에, 넉넉하고 따뜻한 농심이 아쉽기만 하다.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젖어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중고등학교 시절 한번쯤 읊조렸던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다. 육사는 일제 강점의 암흑기에 저항수단으로 시를 썼던 것이다.

나의 고향 가까이 안동은 '청포도'의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가 난 곳이다. 그는 진성 이씨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 손으로  저항성이 강한 영남지역 유림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규범 속에서 자랐다.

이런 가풍의 영향을 받은 육사는 열 일곱번이나 옥살이를 하면서도 독립 투혼을 발휘할 수 있었다. '육사'는 독립운동으로 처음 감옥살이를 했을 때 수감 번호가'264'였던 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본명은 원록(源祿)이다.

시인에게 청포도는 고향을 떠올리는 모티프다. 청색은 이 시에서 중심을 이루는 심상이다.
청신함과 풍요로움, 희망적 이미지, 한여름 무더위 속에 탐스럽게 영그는 청포도는 역사적 사회적 운명을 같이한 공동체(마을)의 원초적 연대 의식(전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다.

절망의 시대에 태어났지만 회유와 압박에 꺾이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내면화해 순수 서정으로 엮어냈다. 시적 자아는 기어이 도래하고야 말 희망찬 미래, 독립의 그 날을 확신하고 예언한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이 곳 양촌에도 일제 때 의분이 분출됐던  독립운동의 터전인 '오라니 장터'가 있다. 그러나 민가 사이에 끼어 세인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표석만 초라하게 서 있어서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가슴을 아프게 한다. 

과거의 흔적이며 미래의 좌표인 역사를 소중히 해야 한다.
힘으로써 남의 역사까지도 자기의 역사로 왜곡시키려는 중국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소중히 해야 하는가를 되새기게 한다.

부국이란 경제적대국만이 아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지킨 역사를 가꾸는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곳을 성역화하고 자자손손 애국심을 키워가게 하는 것이다. 오라니 장터의 독립 투혼이야말로 김포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참 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