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라면 대답할 화두는 달라진다. 너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괜한 맹세의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서른 여섯을 살면서 몇 번의 사랑을 했다. 그 중에 제일 사랑했던 남자가 남편이 된 것은 사실이다. 상대가 좋아지면 그 상대의 높은점 보다 낮은 점을 바라본다. 부족한 부분과 그 사람에게 채워 줘야할 나의 능력을 가늠해 본다.

평강공주의 남편은 바보 온달이다. 어느 날 고구려의 일약 장수로 발탁되어 눈부신 활약을 한다. 전쟁터에서 전사한 온달의 시체를 넣은 관이 움직이지 않자 평강공주가 달려왔다. 남편의 관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니 그제서야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다소 설화적인 면이 짙지만 평강공주는 고구려의 귀족사회를 살아갔던 현명하고 정열적인 한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 준다. 또 집안의 문벌이나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애정에 의해 결혼을 한 훌륭한 여인이었다고 삼국사기에는 적혀있다.

바닷가에서 만난 남편은 막내로만 자라서인지 생활력이 없었다. 삶에 대한 원대한 포부나 꿈 같은 쪽은 감상적이었고 비가 오면 술을 마시고 여름이 오면 해변으로 가야 했던 낭만파였다.

부모가 이루어 놓은 터전에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안일하게 바라보는 탓이라고 이해했다. 그런 남편에게 아이 셋을 낳아주었다. 이제 남편은 누구보다 생활에 충실한 가장이 되어 낭반적인 생각보다는 세 아이 잘 키울 생각으로 부지런해졌다.

일자무식 바보를 정승의 반열까지 오르게 한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이야기가 과장된 면도 있지만 남자를 길들인 평강공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진정 사랑의 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여자들은 남자를 사귀거나 하면 그 남자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느냐가 관심사이다. 생일날에는 무슨 선물을 받았는지… 어떤 근사한 곳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을 사주었는지… 왕비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부러움의 시선이 몰려간다.

그런 대화에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내가 진정 받고 싶은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기에 겉으로는 부러운 척 우~하고 듣지만 별 수 없이 사랑론자로 돌아간다.

어떤 선배는 그랬다. 남자에게 최고의 대우를 받지 않을 바에는 연애할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했다. 그 때마다 내 순정한 사랑론에 대해 갈등을 하고 만다.

그런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한 나는 정말 바보인가! 내가 정말 매력이 없는 걸까! 그렇지만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못생긴 나무 밑에서 데이트를 한다 해도 그늘의 싱싱함은 사랑의 촉매제이다. 상대의 마음이 "진실" 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그것을 확인하는 장소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근사하고 멋있는 곳에서 남자의 마음이 이중적인 거라면 빛나는 보석은 구리 빛이 될 것이고, 향기로운 요리는 체증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비애를 느끼며 그와의 사랑을 접을 것은 당연하다.

사랑을 위하여 사는 여자이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이 부부이든, 모정이든, 연인이든 바라보는 상대에게 사랑을 느낀다면 가슴이 힘들어져도 평강공주가 되려 한다.

그 다음 내가 노력하고 있는 만큼 상대도 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내 사랑의 완결형이다. 사람이 지닌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속성 때문에 받는 것에 익숙한 쪽은 그럴 줄만 안다. 떠난 후에야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그때는 모르는 것이 놓쳐버린 사랑이다.

남자를 만나 저 남자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 그런 계산을 먼저 하는 나 보다는 아직까지도 그 상대에게 무엇이 되어 줄 것인가를 생각하는 그런 나를 사랑한다. 조금 미련해보이기는 하여도 깊을수록 잔잔해지는 강물이고 싶다. 내 마음이 더 슬퍼져도 아름답게 남는다.

백반가루를 섞어 봉숭아꽃 물들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밤이다. 언니와 나란히 누워 파도 소리 듣던 밤, 여름 바닷가에는 별들로 가득 찼었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 끝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어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우린 알고 있었다. 꼭꼭 싸매고 또 싸맸던 그 여름이 가고 첫눈 오던 밤 내 손톱은 아직 반달이었다. 어른이 되어 사랑의 전설도 달라졌다.

내 사랑은 죽어서도 나를 기다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