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하기에 따라서 긍정의 의미로 쓰일 수도 있고 부정의 의미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터미널>은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뉴욕여행을 위해 JFK공항에 도착한 빅터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자신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동안에 그의 고국 크로코지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빅터는 무국적자가 되어버립니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국가가 되어 버려서 갈 수 없고, 그렇다고 미국에 입국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된 빅터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은 공항터미널 밖에 없습니다. 터미널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빅터가 공항보안관리국의 프랭크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프랭크는 교묘한 수법으로 그를 밀어내려고 하지만 빅터는 굴복하지 않고 공항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나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터미널에서 빅터는 친구도 사귀게 됩니다. 이런저런 사연을 지니고 있는 터미널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순박한 빅터와 친구가 되어 빅터를 도와줍니다. 또한 빅터는 미모의 여승무원 아멜리아를 만나게 됩니다.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그녀는 항상 그 남자의 연락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을 빅터에게는 털어놓습니다.

황당하지만 재밌는 설정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한 <터미널>은 관객들에게 따뜻한 감동과 잔잔한 미소를 전해줍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특유의 휴머니즘이라고나 할까요.

뜻하지 않게 어려운 처지에 처한 빅터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기가 처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시작합니다. 터미널 내에서 돈을 버는 방법을 깨닫게 되고, 사람들과 사귀는 법을 알게 됩니다. 터미널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의 문턱이 아니라 빅터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좋은 이야기는 이쯤하고 삐딱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말은 긍정의 말이기도 하지만 부정의 말이기도 합니다. 잔잔한 감동, 역시 가족이야말로 가장 소중하다는 교훈, 모든 일이 좋게좋게 해결되는 해피엔딩까지. 전형적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답습니다.

터미널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 빅터는 때론 화가 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반면 빅터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프랭크는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습니다. 터미널의 사람들은 당연히 빅터의 편이 됩니다.

그렇지만 한번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면 사소한 것들도 삐딱하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철통같은 경비를 하는 공항에서 버려진 공사장에서 멋대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고, 때론 바보처럼 보이는 빅터에게 어쩜 그렇게 재주가 많은지, 아마 보통사람이었다면 당장에 공항 밖으로 탈출을 했거나 공항 안에서 굶어죽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텐데 말입니다.

자, 삐딱한 이야기는 그냥 한 귀로 흘려듣고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터미널>은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영화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