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스름 익어가는 가을 들녁과 맞닿은 능선, 파란 도화지같은 하늘 위로 몽글몽글 솟아오른 뭉게구름… 들판 가운데로 난 가르마 같은 농로 끝 동네. 하얀 2층집이 예진이네다.

하성중학교 2학년인 예진이와 1학년인 준재는 김포가 자랑할만한 청소년 미술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터 신문사와 각국 대사관, 정부부처, 권위있는 단체가 주최하는 미술 관련 대회에 꾸준히 도전해 온 예진이와 준재가 최근 연이어 매스콤의 조명을 받았다.

지난 7월 정통부가 주관한 대한민국우표전시회에서 거북선을 모자이크로 표현한 예진이가 대상을, 보신각을 표현한 준재가 금상을 받은데 이어, 8월엔 한국디자인진흥원과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제11회 한국청소년디자인 전람회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나란히 교통하는 '쌍무지개 육교"를 출품한 예진이가 대상인 국무총리상, 신호등을 출품한 준재가 금상을 수상했다.

"군인들이 지켜주는 안전한 동네잖아요." 8년 전 서울 강남에서 김포 하성하고도 마근포리에 터를 잡은 까닭을 예진 아빠 조완희씨가 우스개로 답했다.

예진네 집에서는 금방 지나온 그림같은 들판이 도화지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예진아, 준재야, 쌍무지개 떴다" 비 갠 뒤 들판을 캔버스 삼아 산봉우리에서 봉우리에 걸친 쌍무지개. 행운의 쌍무지개는 예진이의 작품으로 재현됐다.

"예진아 쌍무지개 본 적 있어?" "예"
"어땠어?" "예뻤어요"
"이 작품으로 대상을 받을 때 기분은 어땠니?" "좋았어요"

참 조용한 애들 대신 부처 같은 미소로 기자를 맞은 사람은 예진이 아빠. 아이들이 그 동안 보고, 듣고, 느낀 흔적들로 빼곡한 거실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자랑한 사람은 예진이 아빠였다.

예진 아빠 조완희씨는 우리나라 '스테인드 글래스' 분야에서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중견 작가다. 공항역, 주엽역, 과천종합청사역, KBS청사 등에 조 작가가 공들인 흔적이 나타나 있다.

"더 많이 보여주고, 들려 주고, 느낄 기회를 마련해요. 그래야 가슴 일렁이는 감동이 머리와 손을 통해 표현돼요". 조 작가가 분신인 자녀들의 방향타요 스크류 역할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이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라고는 미끼지 않는 외모와 잔물결 같은 수수한 예술 혼은 음악과 영상에 대한 관심과 열정의 결정인 듯 싶다. "작곡가와 연주자와 악기의 조화가 이뤄낸 음의 감동을 색과 조형물로 표현하는 것이 미술가"라는 조 작가는 "국어도 수학도 국사도 모두 운율있는 미술"이라고 했다.

예진이가 상층은 동물들이, 하층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쌍무지개로 육교를 표현한 것이 당연하게 이해됐다.

사람 나이 오십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경지'로 칭하던가?
"많은 미술 재료들을 두루 섭렵했지만 뒤늦게 있는대로 투명하게 사물을 투과하는 유리의 진실성에 반해 천착했다"는 글래스 작가 조완희씨.

사람살이 어디든 끼어들어 영향을 끼친다는 예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들려준 그의 얘기들이 공방을 채우는 클래식 운율과 조화로웠다.

미동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아빠 얘기에 귀 기울이는 가족들. 창 밖에 어둠이 내릴 때가지 그가 공들여 펼쳐 보인 음악에 대한 정밀한 기억과 추억의 생생한 지도는 자녀들의 미래를 견인하고 예술혼을 숙성시키는 양분이 될 것임을 믿는다.

선이 굵고 둥글둥글한 준재가 그림, 만화, 포스터 등 디자인쪽에 소질을 보이고 있고, 사춘기를 맞은 예진이는 가늘고 뾰쪽하고 섬세한 선으로 표현되는 회화쪽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어른이 되면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이들 남매는 하성 들판에 자라는 수 많은 아름다운 것들 중 아빠의 정성으로 솟아오를 '환희의 꿈, 쌍무지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