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기에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은 간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누구나 첫사랑이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가까이 있는 남편은 아내가 자신에게 첫사랑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스쳐간 사랑을 말해 버리면 두고두고 트집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해 믿음이 깨어진다면 비극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에서도 가슴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다. 내가 사랑한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해 준 사람은 그 느낌까지 잊기 힘들다.

그런 사랑을 첫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성의 눈을 뜬 대상을 첫사랑이라고 한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뼛속까지 아파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 사랑이라면 판단은 더욱 우매해질 수 있다.

사랑이 맨 처음 눈을 뜬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한마디의 고백도 없이 저 혼자 뛰는 가슴이 고작이었다. 좋아하다, 미워하다 상대의 감정이 혼합되지 않은 내 안의 사랑은 투명하게 흘러갔다.

두 번째 사랑은 고백할 수 있었다. 말로 하는 고백이 아닌 편지를 썼다. 짝사랑이 나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밝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로고 가정통신란에 써주던 담임선생님의 예쁜 글씨는 나를 정말 잘못 본 것이었다.

선생님은 꽃이었다. 꽃밭에는 수많은 나비들이 날아다녔다. 그 중에 나도 한 마리였지만, 꽃잎에도 못 가보고 서툴게 헤엄치는 나비였다.

책상에 널브러진 종이들은 노트의 여백이 아니었다. 휴지로 변해가는 편지지였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갔다. 사랑이 직업이고 공부는 부업이었던 나의 성적은 당연히 혼수상태였다.

짝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같은 것이다. 가슴 한쪽이 따끔거림으로 그만 잊었던, 미련도 눈물도 없었던 풋풋한 두 번째 짝사랑이었다.

느낌도 갖지 않고 감정도 주지 않는 방어전으로 남자관(男子觀)을 선택했다. 남자를 만나 사랑할 수 없는 조건을 발견하는 것도 또 다른 경이감이었다. 오려하면 도망치고, 가까이 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상처를 먼저 계산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내게로 운명은 한 남자를 보냈다. 시험의 대상이었다면 깨끗하게 말려들었떤 사랑. 그를 생각하면 뜨거운 날씨에도 바람이 불어댄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단점은 바늘구멍만해 진다고 한다.

상대의 흠을 찾아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다. 그러나 꿰뚫어 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 사소한 장점에도 집중해 빠져들고, 과장된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는 다정하고 유머가 있었고 무엇보다 입술이 예뻤다. 나는 빠져들었고, 그가 그 길로 능숙하게 인도해 놓았다 해도 그것은 분명히 사랑이었다.

그런 그가 이중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고는 의심할 수 없었다. 상대의 들보는 커져 가고 있는데, 내 눈에는 티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된 애인의 또 다른 애인은, 달리던 차에 부딪쳐 일어나는 '정지감' 이랄까! 믿지 않으려 해도 마음은 스스로 절망으로 걸어갔다. 기적적인 믿음이라도 생겨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물어 보고 따지는 절차도 두려워 관대해지고 용서를 먼저 하지만, 외롭고 괴로운 감정들은 혼자서만 깊어진다. 상처는 언제나 내 몫으로 남았던 것이 내가하는 사랑이다.

한 쌍의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있다고 한다. 전화하고, 밥먹고, 데이트하고 평범한 코스를 거쳐 연인이 되고, 화내고 싫증내는 예정된 코스를 밟아 헤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별과정이라고 한다.

필생의 단 하나뿐인 감정으로 시작해도 결국에는 식어가고 냉정해지는 것이 사랑의 착륙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설령 그 이유가 그 사람의 단점보다 작아도 개의치 않는다. 한 가지 이유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평범한 코스에서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을 만나는 상상을 해본다. 첫 번째는 그런 일도 있었냐는 듯 멋적게 웃고 말 것 같다. 선생님은 원래 꽃밭이었으니 한 마리 날아간 나비쯤이야 이름도 희미해졌을 테니 '기억'도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랑은 만난다면 내 감정은 소용돌이에 설 것 같다. 가시를 안고 피어나는 '선인장' 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는, 잊어버리기 싫은 '첫사랑'이기 때문이다.

좋은 느낌 그대로를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첫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슬픈 기억만이 가득하고 배신으로 헤어진 사랑이라면 비정한 시간은 잊기를 재촉한다. 밋밋하게, 잔잔하게, 서글프게 다가오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세월이 흘러가서 그 어떤 사랑이 첫사랑으로 남아있을지 늙어 회상하는 모습은 생각지 않는다. 다만, 사랑이여 이제 아프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