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고 어느 누가 옳다고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영화는 개봉시기가 다른 공포영화들과 달랐습니다.

2001년 12월, 한겨울에 개봉된 공포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공포영화라고 하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 개봉하는 게 정석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음산한 신음소리, 오싹한 비명, 가녀린 여자아이들의 하얀 눈동자, 갑자기 등 뒤에서 덮쳐오는 정체불명의 검은 손. 이런 몇몇 설정들은 여름에 개봉한다는 것과 함께 공포영화의 중요한 공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분신사바>, <얼굴 없는 미녀>, <인형사>, <령> 등의 공포영화는 이런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올여름 공포영화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영화는 감우성 주연의 <알 포인트>입니다. (<알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몇 년 전에 개봉한 <파라다이스 빌라>에서부터 시작해서 꽤 많이 돌아왔습니다.)

<알 포인트>는 1972년 월남전에서 한 한국군 부대가 수행했던 극비작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6개월 전 ‘로미오 포인트(Romeo Point)’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실종된 수색대원들로부터 계속해서 무전이 걸려오자 CID 부대장은 작전 때마다 피를 부른다는 최태인 중위에게 비밀 수색 명령을 내립니다.

최중위는 귀국선에 오르지 못한 지원병들과 베테랑 진중사와 함께 로미오 포인트에 들어서게 되고 그곳에서 ‘손에 피를 묻힌 자, 돌아가지 못한다’라는 낡은 비문을 보게 됩니다. 로미오 포인트 중심에 자리 잡은 낡은 건물에 머무르는 부대원들에게 하나둘씩 이상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이미 좋은 평을 받았던 감우성은 <알 포인트>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작전 때마다 피를 부른다는 무서운 소문의 주인공인 최태인 중위는 로미오 포인트 안에서 마주치게 되는 공포 앞에서 끝까지 대원들을 지켜냅니다.

<유령>, <꽃섬>, <효자동 이발사> 등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 손병호는 이 영화에서는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실질적으로 대원들을 지휘하는 진창록 중사를 연기합니다. 그 외에도 개성 있는 조연들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그러나 <알 포인트>가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음산한 신음 소리, 가녀린 여자들의 비명 소리, 갑자기 등 뒤에서 덮쳐 오는 검은 손 같은 공포영화의 공식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미오 포인트에 도착한 부대원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와 싸우게 됩니다.

오래전에 죽은 프랑스 병사와 무전으로 교신을 하고 실종된 수색대원들의 모습이 곳곳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찾아야 할 것들과 싸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로미오 포인트에 머물게 됩니다.

물론 <알 포인트>도 보는 사람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공포영화와는 확실히 다르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무언가 허전하고 결국 아무 것도 확실한 게 없는 영화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몇 가지 덧붙이자면, <알 포인트>의 모태가 된 영국 종군기자의 수첩에 실려있다는 이야기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가상의 ‘원작’인 셈입니다. 마치 <블레어 윗치>처럼 말입니다.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뻔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이라면 로미오 포인트를 향해 떠나는 부대원들이 과연 몇 명이었는지 유심히 살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