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만든 <CUT>은 남부러울 것 없는 영화감독의 이야기입니다. 능력 있고, 부유하고, 미모의 아내에 착하기까지 한 인기 영화감독의 집에 어느 날 괴한이 침입합니다. 감독은 괴한에게 납치되어 자신의 집과 똑같이 만들어진 영화 세트장에 갇히게 됩니다.

더군다나 피아니스트인 자신의 아내역시 괴한에게 납치되어 있습니다. 엑스트라로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던 납치범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기 때문에 감독을 납치했다고 말합니다. 부자들은 나쁜 사람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이야 말로 착한 사람들인데 감독은 부자에다 남부러울 것 없이 가졌는데도 너무 착해서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괴한은 피아노 줄에 묶인 아내를 살리기 위해선 길거리에서 유괴해온 아이를 죽이라고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5분마다 피아니스트 아내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협박을 합니다.

얼마 전 개봉한 <착신아리>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만든 <BOX>는 쌍둥이 자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매일 똑같은 꿈을 꾸는 교코는 원래 쌍둥이였습니다.

서커스단에서 상자에 들어가는 마술을 보여주던 언니 쇼코와 교코는 의붓아버지를 똑같이 사랑했습니다. 그렇지만 언니 쇼코가 의붓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걸 지켜만 보던 교코는 단 하루만이라도 의붓아버지의 품에서 잠들기 위해 쇼코를 상자에 가둡니다.

<메이드 인 홍콩>의 프루트 챈 감독의 <DUMPLINGS>는 젊어지고 싶어 하는 여배우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시절 유명한 배우였던 칭은 젊은 여자를 만나는 남편 때문에 외로움과 질투를 느낍니다. 젊어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그녀는 먹으면 젊어지는 만두를 만든다는 메이의 집에 찾아갑니다.

매일매일 메이가 만든 만두를 먹은 그녀는 몰라보게 젊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동안 먹었던 만두가 낙태한 태아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되지만 젊어져서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계속해서 태아로 만든 만두를 먹습니다.

각각의 영화에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CUT>은 증오, <BOX>는 질투, <DUMPLINGS>는 탐욕입니다. 가지지 못한 자가 지닌 가진자들을 향한 증오와 사랑받지 못하는 자가 지닌 사랑받는 자들에 대한 질투, 그리고 끝이 없는 탐욕. 모두 평범한 사람들 속에 숨어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습입니다. 아마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몬스터겠죠.

박찬욱 감독의 <CUT>은 공포영화라기보다는 블랙코미디에 가깝습니다. 무시무시한 괴한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구수한 사투리며 괴한을 웃기기 위해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춤을 추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웃지 않으려야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부조화가 오히려 끔찍함을 더해줍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 편의 영화를 묶어주는 끈이 공포 말고 하나 더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있는 영화감독, 의붓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쌍둥이 언니를 상자에 가두는 여자아이, 그리고 젊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여배우. 모두 어그러진 모습의 사랑이라는 끈으로 묶인 괴물의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랑도 결국 무시무시한 공포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