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선듯해지면 눈과 귀가 밝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사물의 모서리가 뚜렷해지고 소리의 결이 예민해집니다. 모습들이며 소리들이 본래의 속성을 드러내는 걸까요.

'포크 음악' 아시죠. 요즘 20대들에게는 생경한 용어겠지만 이 치들도 멜로디를 들려주면 흥얼흥얼 웅얼웅얼 제법 따라 하더군요. 포크(Folk) 음악은 언어적인 의미 그대로 오랜 전통의 민속 음악 또는 민요를 일컫습니다. 파퓰러 쪽으로는 통기타, 하모니카 등으로 대변되는 "6~70년대 생음악" 정도로 번역이 되지요. 단촐하고 소박한 포크 음악은 '음유(吟遊)스런' 싱어송라이터들을 통해 오늘까지 그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詩)를 감상하면서 참여, 순수라는 구분을 지어 '공부'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요새도 이런 이분법적인 교육 방식으로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어린 생각에도 뭐가 참여고 순수인지, 순수하지 않은 것들은 참여고 참여적인 것은 순수하지 않은 것인지, 웃기는 짬뽕이다, 실소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포크를 문학에 빗대면 시 장르에 대입해 볼 수 있겠습니다. 순음악적으로 그 원형질의, 날날(生)함의 맛은 한편 시를 읽을 때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사회적으로도 몇몇 문제작들은 혁명에 버금가는 반향을 일으켰던 적도 있고요. 대중 음악의 한가지 큰 뿌리로서, 아마도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포크 음악. 세 명의 음유시인을 소개합니다.

○ Vashti Bunyan 30년이 넘게 종적이 묘연했다가 지난해 불쑥 나타난 배시티 버니언. 로-파이(Lo-Fi) 팬들은 이 촌티 팍팍 풍기는 아줌씨에게 '레전드의 재림'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35년 만에 발매된 2집 <Lookaftering>은 각종 차트에 랭크됐고 알음알음 고가에 거래되던 데뷔 음반 <Just Another Diamond Day>도 복간돼 그 동안의 판매량을 웃도는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 자신도 어리둥절했다는 대중의 환호는 지극히 '포크스러운' 삶의 행로에 기인했다고 본다. 1970년 첫 앨범 발표 후 그녀는 키우던 말, 개, 돼지, 새 등을 트레일러에 태우고 훌쩍 목적지 없이 떠난다. 10년여의 여행을 마치고 한적한 전원에 정착해 외부와의 연락을 단절하고 지내던 중 우연찮게 자신이 포크의 전설이 돼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렇게 후배 뮤지션들의 헌신적인 서포트 속에 등떠밀리다시피 세상에 나오게 됐다나. 포크는 세월이 흘러도 본령을 훼손함이 없이 동시대와의 교감이 가능하다. 틈틈이 습작한 시에 바탕해 35년 시공을 뛰어넘은 그녀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바람 불고 비가 오니 우리 다시 여행을 떠나요. 흙묻은 신발로 골목길 돌아 터벅터벅 …" <Come Wind Come Rain 中>

○ Bob Dylan 순수, 참여의 도식으로 봤을 때 영국권 포크가 순수 쪽에 가깝다면 우디 거스리, 피트 시거 등 '운동권'으로부터 촉발된 미국 포크는 참여의 성향이 강하다. 포크의 프로파간다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밥 딜런. 그의 텍스트는 대학에서 사회과목 커리큘럼으로 개설될 정도다. 60년대 급진적인 비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인물로 조명받았지만 정작 딜런 자신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복무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사회와 인간에 관한 성찰은 그를 "저항의 아티스트"라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코맹맹이 목소리와 이질적인 가사 때문에 선뜻 와닿지 않고 우리네 정서와는 조금 맞지 않는 면이 있다. 허나 그는 곱씹을수록 새롭다. "통기타를 버렸다"며 골수팬들로부터 돌멩이 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67년 <Highway 61 Revisited>를 통해 포크락의 새로운 미학을 완성하며 논란을 종식시킨다. 수록곡 <Like A Rolling Stone>은 후에 타임紙 선정 '20세기를 바꾼 노래'로 뽑혔다. "아무 것도 없을 때 너는 잃을 것이 없다, 감출 비밀도 없다... 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집어야 하지. 그리곤 저당잡히는 것이 좋을 것이야. 어떻게 느끼느냐" <Like A Rolling Stone 中>

○ 김의철 7~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황으로 인해 부득불 해외에서 유랑해야 했던 문화·예술인 중에 김의철이 있다. 고등학생때부터 작곡을 시작, 천재성을 인정받은 김의철은 일찌기 군사정부의 무지막지한 가위질과 협박을 당하자 스스로 기약없는 유배를 떠난다. 독일과 미국에서 클래식을 수학하면서 유수의 연주인들에게 기타를 사사받고 교수로도 재직하며 음악활동을 계속하지만 그의 관심은 늘 '한국적 포크'에 있었다. 김의철은 16년 동안의 유량을 마치고 1996년에 영구 귀국, 2003년 부터 "포크의 부활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는 의지로 <포크 청개구리>를 부활시켜 노래 운동을 이끌고 있다. 포크와 클래식의 접목, 여기에 한국인의 고유의 '恨' 정서를 입힌 그의 음악적 성취는 김광석의 죽음으로 맥이 끊기다시피 한 한국 포크계의 새로운 희망이다. 한대수, 김의철이 국내에서 계속 활동을 했었다면 한국 대중음악의 지평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부질없는 물음이겠지만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누이같은 그가 소중한 이유다.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홀로 애태우다 흙속으로 묻혀갈 나의 인생아" <불행아(저 하늘의 구름 따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