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엄마 몰래 지갑에서 동전을 꺼냈던 비밀을 지닌 사람도 있고, 한밤중에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동생과 자리를 바꿨던 비밀을 지닌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이 첫사랑이야, 라고 고백하고 결혼했지만 여전히 첫사랑의 기억을 몰래 품고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연애를 하는 도중에 위태위태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세 자매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운영하는 재즈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막내 미영은 매력적인 남자 수현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자신의 완벽한 이상형인 수현에게 빠져든 미영은 집으로 수현을 초대해서 가족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엄마의 생일에 수현에게 청혼을 합니다.

대학원생인 둘째 선영은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남자 한 번 사귀지 못한 처녀입니다. 아직 키스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선영은 남동생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비디오와 책을 보면서 남녀관계에 대한 이론공부를 합니다. 사랑은 번개처럼 찾아온다고 믿고 있는 선영에게 뜻하지 않게 동생의 애인인 수현이 사랑의 감정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바람둥이 막내의 새 애인이 집에 찾아온 날부터 세 자매에게는 비밀이 생깁니다. 그냥 얼굴만 반반한 줄 알았던 그 남자가 잉게보르그 바하만과 고정희를 좋아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감상적인 남자라는 걸 알게 된 둘째 선영은 걷잡을 수 없게 수현에게 빠져들고 눈을 가린 미영의 앞에서 수현과 입맞춤까지 합니다.

목이 깊게 패인 원피스를 입어본 진영에게 목선이 아름답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자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왜 알지 못하느냐고 묻는 수현에게 진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합니다.

세 자매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 어떻게 보면 꽤나 파격적인 이야기지만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어둡거나 무겁지 않고 가볍고 밝은 영화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입니다. 친구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동생의 애인, 혹은 언니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영화처럼 깔끔하고 쿨하진 않습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고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게 대부분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저 사람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선 용납하지 못하는 게 보통사람의 심리니까요.

어쩌면 수현은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캐릭터인지도 모릅니다. 준수한 외모에 깔끔한 매너, 거기에 지적인 면까지,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단지 모두에게 나쁜 사람일 뿐입니다. 결코 그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하긴 세 자매와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라니요, 어쩌면 다른 결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이었다면 아마 무겁고 어두운 영화가 됐거나 선영이 보고 배웠던 비디오 같은 영화가 됐을 테니까요.

한 가지 더, 누구나 비밀은 있지만 과연 수현의 비밀은 무엇인지 꽤나 궁금했습니다. 그냥 잘나가는 바람둥이인지, 과연 뭔가 엄청난 비밀을 간직한 신비로운 인물인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