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엉덩이에 연달아 꽂혀졌다. 순식간이지만 '그놈 참 빠르고 예리하군! 뛰어가서 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몸은 의식을 멀리하고 자꾸만 고꾸라졌다. '죽는 건 이런 거로구나.' 억울한 건 한 번 피어보지도 못 한 채 이대로 가는 것이었다.

낼이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죽은 나에게 충격하고 경악하겠지. 꿈도 아닌 현실 속에서 이 무슨 홍두깨람!. 아, 옛날이여! 가 아니다. 불과 몇 시간 전의 내 모습이여!

'……'
"여보세요."
"이모! 나야."
"응, 웬일?"
"좀 나올 수 없어?"
"뭐야? 너 미쳤니? 밤늦게 촐싹거리지 말고 빨랑 집에 들어가!"

짜증을 내고 끊었지만 석연치 않은 마음이다. '똑딱똑딱' 시계는 밤 열시가 되어 가고 있다. 멋부릴 여유도 없이 옷을 껴입었다.

동짓달 겨울밤에 부엉이 외출이라니! 거리엔 그 애 만큼이나 성가시게도 눈발이 날리고 있다. '무슨 일로 그러는걸까!' '또 어떤 녀석과 헤어진 게로지.' 둔한 예감으로도 뻔한 일이었다.

네온 빛 거리는 황홀할 지경으로 눈부셨다. 그 애의 울먹이던 목소리만 아니라면, 나는 순순히 불빛에 삼켜들어 갈 것이라고 작위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는 무슨 생각인지 쪼르르 달려왔다. 그러더니 음악이 쾅쾅 울리는 나이트클럽을 가리키며 팔을 잡으려 한다.

"헉!!"
겁은 나고 있었지만 못들은 척 걸었다.
"이모! 여기야, 여기"
손까지 높이 흔들고, 짖궂게 웃고 있는 그 애 곁으로 가는 동안 나는 잠시 후에 일어날 비극쯤은 예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너, 금방 질질 짜던 애 맞어?"
"푸하하하… 이모 나오게 하려구 연극 좀 했지."
"뭬야?!!! @#$%^&*!"

화도 낼 수 없게 살랑거리는 그 앨 놔두고 오던 길로 가기에는 이밤이 무척 푸르러 보인다는 것이다. 취한 속도를 맞춰야 할 것 같아 나는 연거푸 500cc 맥주 잔을 비웠다.

날마다 일상에 찌들고 닳아져 가고 있던 차, 그렇다고 제 멋대로 밤거릴 쏘다닐 나이도 지나버렸고, '눈물'이라는 희소성 가치를 순진하게 믿고 나온 결과치고는 꽤 괜찮은 밤으로 착각하고 있는 나였다.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분명 사귀던 녀석과 삐그덕 거렸거나, 아예 쫑내고 온 길인지도 몰랐다. 지금은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누가 뭐래도 혼자서 고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지, 해결책이 있다면 매일매일 멍하니 시간 죽이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요 꼬맹이는 모를 일이었다. 삼십여 년을 살아서야 겨우 터득한 방법을 어린것이 알 턱이 없겠지!

"너, 양다리, 문어다리 걸치지 말랬지?"
"괜찮아, 애인 두 세 명은 기본인데 뭐."
"니가 무슨 엽기녀야? 한 녀석만 좋아하란 말야."
"싫어! 그건 이모나 그러는거지…"
"그리고 간수하기 힘들면 이모에게 넘기라고 했자너. 왜 안 넘겨 주는 거야?"
"???!!!"

1차, 2차, 3차 몇 차례를 뺑뺑 돌아다녔을까! 막차도 떠나버린 거리는 텅텅 비어있었다. 그 앨 택시에 태워 보내고 집을 향해 걸었다.

의식의 초점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집 앞 전봇대기둥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입체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날쌘 그놈은 어디서부터 노려보고 있다가 덤벼든 것일까?! 희미한 저편에서 오토바이를 봤던것도 같은데, 거기에 타고 있던 녀석이었을까?! '그 애는 잘 가고 있겠지.' 나는 그렇게 떠나고 있었다. 소리칠 힘조차 정지시켜 버린 채.

그 앤 큰 언니가 낳은 딸이다. 무엇이 그리고 급했던지 언니 나이 스물 두 살에 남자 하나 허리에 끼고 와서 일방적으로 결혼을 선언했다.

이미 넘지 못 할 선이고 금이고 다 넘어버린 듯한데 그 당당함에 기가 차서 때리지도 못하던 부모님. 가늘어진 어깨는 한동안 나를 다짐시겼었다. '나는 일찍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스물 네 살에 엄마 곁을 떠났다.

한번도 후회해 보지 않았던 이별이었건만, 죽음의 순간에서는 엄마와의 이별이 자식하고의 이별보다 더한 진액으로 흘러나왔다. 실가닥 같던 엄마의 가슴으로 꽃줄기가 하염없이 뻗어가고, 꽃잎들은 어우러져 가물거리고 있다. 하얀 달꽃 같은 엄마의 미소를 바라 보았다.

"아!! 너무 아파요."
"아줌마, 참아요, 애는 어떻게 낳았어요?"
의사는 빙글빙글 웃으며 찢어진 엉덩이를 바느질하고 있었다.

'아줌마라고! 오늘은 참아야 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추적 60분을 되돌려 갈 수 없다. 많고 많은 신체 부위 중 가장 다행스러운 위치에 정확히 정조준한 그 놈의 칼 솜씨(?)를 고마워 할 수밖에.

칼을 든 강도를 만나고도 살아남은 나야말로 그 애보다 더한 '엽기녀'가 아닐런지…
그 겨울의 문턱은 여러모로 내 인생의 지침서가 되었다. 다신 밤거리의 네온사인을 동경하지 않았으니까. 여름이 깊어 가는, 동짓달 그 바람이 휑한 퉁풍이 되어 가슴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