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수 지사장

고령사회로의 진입은 단순히 나이 든 인구가 늘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존엄하게 나이 들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는가를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배제되며,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례들을 목도하고 있다. 노인의 인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리고 그 권리를 지키는 일은 국가와 사회 모두의 책무이다.

◆ 한국 사회의 노인 인권 실태

국가인권위원회가 2023년 발표한 ‘노인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노인의 42.6%가 일상에서 차별이나 무시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의견을 존중받지 못한다”, “대중교통이나 병원 등 공공시설 이용 시 홀대 받는다”는 응답이 많았다.

또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8,000건을 넘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2%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학대 유형은 정서적 확대(35%), 신체적 학대(26%), 경제적 착취(21%) 등으로 다양하며,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학대도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 지역 사례: 김포와 인근 지역에서 드러난 인권의 사각 지대

경기도 김포시에서는 2024년 중순, 80대 독거노인이 수개월간 고독사 직전의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주민 신고로 구조된 사례가 있었다. 해당 어르신은기초생활수급자였지만 복지제도에 접근하지 못했고, 사회적 단절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 사건은 돌봄 사각지대의 현실을 드러내며, 제도 중심의 복지가 아닌 인권 기반의 접근이 절실함을 보여줬다.

또한 인천의 한 재가복지센터에서는 방문요양보호사가 경제적 이득을 위해 어르신의 통장을 무단으로 사용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형사처벌로 이어졌다. 이는 제도의 허점과 함께 고령자의 자기결정권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 노인 인권 보호를 위한 4대 정책 과제

1. 노인 인권 전담기구의 강화와 확대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노인 인권센터를 설치하고, 인권 침해 사례를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인권 교육의 일상화
요양시설 종사자뿐 아니라 공무원, 주민, 가족 등 지역사회 구성원이 참여하는 노인 인권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3. 디지털 격차 해소와 정보 접근권 보장
노인들이 스마트폰이나 행정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해 복지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접근성 중심의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4. 사회적 고립 예방과 참여 확대
복지의 관점을 ‘보호’에서 ‘참여’로 전환해 노인이 지역사회 활동과 의사결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 공공기관의 책무와 연대의 역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고령사회의 공공책임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단지 건강과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노인의 인권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를 개선해 나가고자 한다. 장기요양제도의 운영뿐 아니라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한 학대 조기감지, 지역연계 돌봄체계 강화 등을 통해 예방적이고 통합적인 노인 인권 보호 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노인의 인권은 그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존엄하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된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인권 환경이 곧 우리의 미래이다. 공공기관과 지역사회, 시민 모두의 연대와 관심으로 ‘모두가 존중받는 노년’을 함께 만들어 나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