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향한 열정이 신병처럼 괴롭던 세월을 딛고 서른 다섯살 늦깎이로 소리에 입문한 조원장은 "세월이 가고 배우면 배울수록 성에 차지 않아 무던히 기다리며 참고 다져 온 15년 소리꾼의 길이 결국 든든한 자존감의 바탕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역이 조화로운 어떤 소리에도 귀가 밝었던 그녀의 소리탐은 서른 다섯살 되던해 부천의 시장 골목을 지나며 들은 장구소리에 꽂혔다.

"이상하게 끌리더라구. 그 때는 우리소리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걸로만 알았지. 아마 그 즈음 나는 어디서 뺀드하는 사람들을 먼저 만났다면 가수가 됐을 거예요. 내성적이고 아무 끈도 정보도 없던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소리나는 곳의 전화번호를 외워와서는 잊어버릴까봐 적어놓고 조심스럽게 전화했어요. 수강료 들고 찾아가면 되는데 그 간단한 걸 그 때는 몰랐던 거지요."

직장에 다니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도 늘 허기지는 삶의 빈 자리는 이유없이 온 몸이 아파 앉을 수도 없던 신병 증세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 장구 장단에 맞춰 소리를 시작하면서 삶은 무지개로 변했다. 지난 세월은 꿈만 같았다.

"정말 살맛이 났어요" 조근조근 안정감 있는 조 원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바른 길을 가겠다는 끈기와 성급한 욕심을 스스로 경계하는 반듯한 인성"을 오래 존경받는 소리꾼의 덕목으로 꼽았다.

삶의 빛이던 첫번째 스승이 노름과 음주를 가까이하면서 무절제한 생활로 허물어지자, 가뜩이나 차지 않던 빈 가슴에 이는 회의감과 막막함에 정신적인 고통이 컸기 때문이다.

"신이 있는 것 같았어요. 길이 보이지 않던 그 때 우연히 인천에서 학생들의 국악 공연을 관람했는데, '정선 아리랑'을 부르는 학생의 소리가 막 끌리는 게에요. 참 좋아요. 끝나길 기다렸다가 다짜고짜 사사받는 선생님 존함을 물었더니 '이춘희 선생님'이라 거에요. 그 때는 그 분이 어떤 분인인지 전혀 몰랐지만 눈썹그리는 연필로 전화번호를 적어와서는 무조건 찾아 갔어요. 당시 내 처지엔 거금인 수강료를 들고 부천에서 한남동까지 오갔어요."
'소리를 시작한 이상 사생활은 없는 거다'란 선생님 말씀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단다.

그런데 그 즈음에 이춘희 명창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조원장은 부득이 다른 선생한테 인계됐고, 엎친데 덥친다고 아들 건강에 문제가 생겨 그마저 계속할 수 없었다. 천우의 기회를 잃고 일정 기간 당시 김세레나를 흉내내 새타령을 부르며 외도도 했지만, 득음에 대한 갈증만 더할 뿐이었다.

"한 3년 그러다가 결국 선생님께로 돌아왔어요."
그 후 조 원장은 민요와 시조부문에서 전주대사습을 비롯해 KBS, EBS 방송이 주최하는 국악노래자랑 등 전국 유수한 국악제에서 줄곧 상위 입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선생의 수제자로 뉴욕, 워싱턴, 시카고 등을 순회하는 해외 연주길에서도 그녀의 인기는 상한가를 때렸다.

"지금껏 한 순간도 내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 적 없는데 이건가, 싶다가도 늘 차지 않고 뭔가 허전해요. 지금은 욕심을 조절하는 끈기가 기교를 앞선다는 신념도 생겼고…" 소리의 이정표를 찾아 헤메던 긴 세월의 모진 시련이, 어쩌면 명랑하고 낭낭한 그녀의 소리 빛에 '감칠 맛나는' 서러움의 잔영까지 더한 것은 아닐까?

곧 꾸려질 사단법인 경기민요보존회와 대한시조협회 김포지회로 탄탄히 자리잡기 위한 준비에 전념하며 터전을 마련해준 김포 소리꾼들의 든든한 맏언니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있는대로 보이고, 진정으로 소통하는 솔직한 인간관계를 좋아한다" 는 그녀에게서 바람에 몸 눕히는 들풀같은 겸손과 상하좌우를 아우르는 은근한 저력이 느껴진다.

민요와 시조 부문에서는 이제 부러움이나 욕심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른 듯한 그녀에게 우리 소리를 찾는 이들이 안심할 이정표이자 목적지 역할을 기대한다.

○김포국악원에서는 어린이 주부,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조, 경기민요, 대금, 단소, 가야금, 장고, 해금 등 우리음악을 가르친다. (문의 ☎ 996-1259, 017-357-3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