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말하는 색깔론,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빨갱이 논쟁에 대해서 이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이야기는 맘대로 입밖에 낼 수도 없었습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공산주의자들은 철천지 원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은 빨간 얼굴에 무시무시한 뿔을 달고 있는 도깨비였습니다.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만으로도 간첩으로 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순간 대한민국 국적기가 휴전선을 통과해 평양 공항에 내려앉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고, 말로만 들어보던 금강산 일만이천봉 구경을 다니는 세상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때만 되면 여기저기서 색깔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현실입니다.

잔잔한 재즈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는 거친 흑백화면으로 힘있게 진행됩니다. 자신에게 헌정된 파티에서 머로는 참석자들을 향해 날카로운 외침을 쏟아붇습니다. 시간이 지나 역사의 이름으로 그 시대를 돌이켜 본다면 부끄러운 모습밖엔 발견할 수 없을 거라면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진정한 의무라고 말합니다. 보기 싫은 것, 듣기 싫은 것, 불편한 것들을 외면한다면 역사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그의 말은 반 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에도 날카롭게 울립니다.
결국엔 진리가 승리할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승리를 얻기 위한 싸움에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진리에 대한 신념만으로, 그리고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맥카시 의원에 맞서 싸우고 결국 진실을 밝혀낸 에드워드 머로처럼 말입니다.

결국 역사가 말해주듯, 맥카시즘은 미국 역사에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시절,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싸웠던 에드워드 머로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는 이제 영화가 됐습니다. 영화의 흑백화면은 1950년대의 미국을 보여주지만 영화를 보고 있는 이 곳의 현실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요? 여전히 색깔론이 판을 치고, 언론들은 진실을 외면하는 세상, 반세기가 지났지만 별로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힘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영화 포스터의 문구가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