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센터는 불타고 있었고 곧이어 다른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했습니다. 울부짖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무역센터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단 한 번도 침략 받지 않았던 미국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속보를 알리는 화면엔 'America is under attack'이라는 붉은 글자가 선명했습니다.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은 전 세계가 알고 있습니다. 테러의 배후로 알카에다를 지목한 미국은 알카에다의 본거지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였습니다. 테러에 대한 복수를 위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 다음은 대량학살무기로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라크를 응징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쌍한 이라크 국민들을 위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그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걸어서 백악관에 들어가지 못한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가 9/11사태 이전까진 1/3이 넘는 기간을 휴가로 보냈다는 걸 알고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테러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었던 그가 과연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으로 손색이 없는 걸까요?

테러 직후 대통령의 아버지가 탄 비행기조차 강제착륙을 하고 있을 때 수십 대의 비행기가 백악관의 허가를 받고 빈 라덴 일가를 태우고 유유히 미국을 빠져나간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더 거슬러 올라가 부시일가와 빈 라덴 일가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독재자 밑에서 고통 받는 이라크 국민들을 해방시키겠다던 이라크 전쟁에서 가장 많이 희생당한 사람들이 힘없는 부녀자와 아이들이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가진 자들과 더 많이 가진자들이야말로 자신의 든든한 빽이라며 조지 부시가 기업인들과 건배를 하는 순간에 이라크에선 어린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도시에서 태어나 어렵게 살다 군에 입대한 젊은이들이 말입니다. 미국 의원들 중에 자식을 이라크에 보낸 사람이 단 한명이라는 사실에 <화씨 9/11>의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의회 앞에서 의원들을 붙잡고 자식을 입대시켜 이라크에 보내서 애국을 하라고 권합니다. 그렇지만 의원들은 손사래를 치고 외면합니다. 보고 있으니 우리나라랑 별로 다를 게 없더군요.

물론 ‘보이는 것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라는 명제는 마이클 무어와 그의 영화에도 적용됩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기 위해 이 영화를 찍었다고 대놓고 말하니까요. 그렇지만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자유와 평등의 나라, 언제나 정의로운 나라라고 믿고 있는 대다수의 미국국민들조차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이 공개된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방법 때문에 자신이 패했어도 깨끗하게 승복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나 백악관 앞에서 혼자서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불의를 바로잡으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이야말로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하니 부러웠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그런 힘이 있고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으니까 희망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