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 저수지를 돌아나가는 길목 끝지점에 서서 잠시 망설이게 됩니다.

한쪽은 콘크리트길로 승가대에서 인천 불로동으로 넘어가는 아스팔트 차도와 바로 연결됩니다. 다른 한 길은 장릉산 오솔길로 숲속의 운치를 더해주긴 하지만 한참 돌아가는 길입니다.

속도감과 효율성을 따진다면 시멘트 콘크리트길이 단연 매력을 끕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어느덧 뉘엿뉘엿 서산에 해그림자가 드리워질 시각입니다. 갈길이 멀다는 듯  두 눈에 비쳐진 시계바늘은  머릿속을 압박합니다. ‘그냥 빠르고 편한 길로 가면 되지 뭘 망설이느냐’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립니다. 콘크리트에 연이어진 아스팔트 길을 잠시 바라다 보았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따라 몸을 내맡겨 보았습니다.

잠시 후 자동차 소리가 아닌 숲속의 바람소리가 귓가에 들려옵니다. 시간의 촉박함을 무시하듯 ‘선택권은 나에게 있으니까 잔말 말고 따라오라’고 말하는  두 다리의 나직한 속삭임이 귓전을 때립니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따지기에 앞서 아직도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두 다리와 발은 판단한 듯합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읍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구절 한자락이 떠오릅니다.

나의 발걸음이 외면해버린 저 콘크리트 길도 예전에는 분명 풀내음이 우거진 숲속의 한복판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고 마을이 들어서고 아파트와 공장이 건립되면서 아스팔트 도로가 자동차를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사람이 낸 길을 사람이 외면하고 다시 숲속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감과 희망이 교차됩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망가지지 않는 곳이 없기에 느껴지는 불안감과, 그래도 자연을 동경하는 원초적 그리움이 밑바닥에 깔려있음을 보면서 희망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장릉산 숲길에 들어서면서 단상 한자락이 머리를 스칩니다. 한여름, 대지와 벌판에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는 거칠 것이 없는 에너지 그 자체입니다. 한밤을 견디며 새벽을 맞이하던 풀잎의 이슬도, 간밤에 내리 퍼부으며 대지를 흔들던 빗방울도 이 태양의 열기 앞에서는 한낱 초라한 미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그러기에 김민기가 노래했던 ‘아침이슬’에 비쳐진 이슬방울의 슬픔은 처연함을 뛰어넘어 비장감까지 안겨줍니다.

하지만 숲속을 찾는 햇빛은 만물위에 군림하는 위엄있는 존재라기 보다 조용히 찾아오는 손님의 모습입니다. 하늘로 향하여 무성하게 뻗어있는 가지들과 잎사귀는 햇빛이 숲에 내려올 때 처음 맞이하는 대상입니다.

벌판위에선 거칠 것 없던 햇빛도 이들 앞에서는 ‘들어가도 되냐’며 조용히 동의를 구하는 손님의 모습입니다.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은 숲 전체를 돌아보며 주변의 의견을 물어봅니다.

전체의견이 모아졌는지 한줄기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나뭇가지와 바람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문을 열어줍니다. 그때서야 햇빛은  비로소 그 사이로 살며시 들어와 흙더미 사이에 보드랍게 입맞춤합니다.

햇빛을 맞이하는 숲속의 흙길은 수줍은 색시마냥 빠알간 황토색을 띱니다.

그늘과 그림자조차도 햇빛과 한데 어울려 숲속을 모자이크의 세계로 만듭니다.

숲에서는 그 누구도 위아래가 없는 공존의 세계임을 배우게 됩니다.

장릉산 숲속 오솔길은 ‘겸손과 공존’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자연의 스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