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업힌 욱이가 또 오줌을 쌌나보다. 엉덩이가 뜨끈하게 느껴지면서 몸서리를 쳐대니 … 그래도 쌕쌕거리며 다시 깊은 잠에 빠지는 게 고마울 뿐 조금도 밉지 않다.

두 시간 넘게 업고 있어 허리, 팔, 다리는 끊어질 듯했지만 기대와 설렘으로 부웅 뜬 기분이었다. 이미 완성되어 벽에 걸려있는 빨간 치마도 쉴새없이 움직이는 엄마의 손끝 따라 점차 제 모양 찾아가는 노랑저고리가 무척 신기하며 예쁘게 느껴질 것이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저녁 해는 뭐가 그리 급한지 째깍째깍 낡은 시계초침을 재촉한다.

두 밤만 자면 여덟 살이 되던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구정 보름 전쯤, 매서운 바람이 쌩쌩 눈보라와 함께 휘몰아치던 어느 일요일. 왕복 십리가 넘는 외가에 욱이를 업고 걸어 다녀오신 엄마가 붉은 보자기를 푸셨다. 동생들이 입을만한 빛바랜 털옷, 헌 내복, 구멍 뚫린 양말이 잔뜩. 내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시무룩하여 서있는데,

"계옥아, 막내이모가 입었던 한복인데 불때다가 태웠대. 잘라내고 네 것으로 예쁘게 만들어줄 테니 동생들 잘 봐야돼, 알았지?" 엄마가 밖에서 일을 할 때면 가슴 위에 매어도 질질 끌리는 치마와 양팔을 벌려도 손끝이 보이지 않는 큰 저고리를 입고 시집가는 색시가 되었다.

검게 그을려 뻥 뚫린 구멍을 다리 밑으로 감추고 두 손을 얌전히 아랫목에 앉으면 두 살 아래 남동생 승이가 수건을 걸쳐주고 머리엔 오색테이프를 풀어주었다. 양 볼과 이마 한가운데는 빨강 색종이를 둥글게 찢어 침을 발라 철컥 붙여준 후 자기는 신랑이라며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곧 싫증이 나면 아리랑이나 도라지 노래에 맞춰 제멋대로 춤도 추고 소쿠리에 종이를 잘게 찢어 방 가장자리를 돌며 조금씩 뿌리기도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 ♬"

그러면서도 '언제나 이 긴 옷을 내게 딱 맞게 고쳐주려나?' 엄마 눈치만 살폈다.
이윽고 며칠 전부터 엄마의 한복 고치기 작업이 시작되었고 나의 '동생 업어주기' 노동도 계속되었다.

'내일 모레면 설날인데 오늘은 꼭 입을 수 있으려니 …' 새벽부터 기대했건만 실컷 잔 욱이는 꾸물꾸물 몸 트림하다가 급기야 칭얼칭얼 울기 시작했다. 앉았다 일어섰다 좌우로 흔들며 달래려 아무리 애써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허리를 편 엄마가 바깥 어둠을 느끼자 꿰매던 일감을 접어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어휴, 어느새 해가 기울었네. 이리 와 봐라, 우리 아가야! 아니, 이토록 오줌을 여러 번 쌌는데 그것도 몰랐니? 네 옷도 다 젖었겠다. 어서 깨끗이 씻고 옷 갈아입어라. 아기 목욕시켜서 젖먹이고 저녁 빨리 서둘러야겠다. 저건 내일 마저 하기로 하고."

'조금만 더 잤으면 예쁜 한복을 오늘 입을 수 있는 건데 …!'

다음날 아침, 빨간색 옷고름과 하얀 동정이 제자리를 찾음으로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치마저고리를 입을 수 있었다. '아, 이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손꼽았는가!' 비록 새 옷은 아니지만 엄마의 정성에 내 인내심이 가미된 설빔인 것이다.

그 날 저녁, 내후년에도 넉넉할 설빔을 입고 공손히 세배하는 법을 배웠다. 긴 치마를 허리끈으로 여며 묶는 방법도 배웠지만 질질 끌려 입는 것을 더 좋아했다. 개구쟁이 승이가 혹시라도 건드릴까 머리맡에 두고 잠을 청했는데 긴긴 겨울밤은 왜 그다지도 거북이 걸음을 하는지.

엄마 아빠 손잡고 아랫마을, 건너 마을 경아 할머니와 훈이 할아버지께 세배 다니던 일! 가는 곳마다 종이봉지에 밤, 대추, 떡, 과자를 가득 안겨주어 입에서 단 트림이 나도록 실컷 먹었던 일! 지난 가을에 시집간 언니가 보고싶다며 훌쩍이던 영숙이와 신나게 널뛰던 일! 막내이모 무릎에 걸터앉아 높다란 그네로 공중 날던 일!

개구쟁이 명환이 오빠가 일부러 흙을 파 던진 자치기에 치마 뒤집어쓰고 울던 일! 윷놀이 시합에서 높이 던진 종택이 아버지 윷 하나를 치마로 받아 무효처리를 면하게 해주었던 일! 외가 사랑방에 모인 동네 어른들 앞에서 아빠의 아코디언에 맞춰 산토끼, 아리랑 춤추던 일! 아빠가 만들어준 2층 짜리 썰매를 타고싶어도 설빔이 행여 젖을까 배아프다 꾀부렸던 일! 명절 지나 처음 등교하는 날 아침마다 교무실의 선생님 한 분, 한 분에게 공손히 절했던 일!

작아지는 설빔에 크는 키를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던 엄마아빠는 매우 흐뭇해하셨다. 흔히 불편해서 못 입겠다는 한복을 어려서부터 입어온 설빔 덕분에 양장보다 더 잘 어울려 자주 애용하게 된다. 가난 속에서도 설빔만은 고운 한복으로 준비하여주신 친정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