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덥고 습한, 불쾌지수가 높은 날들입니다. 그렇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여름은 즐거운 계절입니다.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맘대로 골라 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영화가 개봉하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니까요.

그래도 여름에는 밝고 경쾌한 영화나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영화가 어울립니다. 신나게 웃거나 화려한 영상에 푹 빠져 있다보면 더위는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버리고 영화가 끝나고 다시 거리로 나서면 더위도 한풀 꺾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굳이 재밌고 신나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라면 어떤 영화라도 괜찮겠죠.

더위를 피해 찾은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볼까 두리번거리다가 <내 남자의 로맨스>를 선택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살인범을 잡기 위해 전출 온 서울 출신의 서태윤 형사를, <생활의 발견>에서는 느물느물한 연극배우 경수를 연기했던 김상경이 이번에는 평범하고 무던한 김소훈이 됐습니다. 그리고 요즘 드라마에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정은은 7년간 연애를 한 소훈에게서 프로포즈를 받는 것이 유일한 소망인 스물아홉의 김현주가 됐습니다.

이미 예고편과 광고를 통해 대강의 줄거리를 짐작하고 있었던 터라 기대라면 기대를 하고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렸습니다. 수유리에 모여 사는 오총사들을  보면서 영화 <싱글즈>가 생각났습니다. 비슷한 또래들의 비슷한 사랑이야기니까요.

<내 남자의 로맨스>도 마찬가지입니다. 7년간 연애를 한 소훈과 현주, 소훈은 매사에 열심이고 모범적인, 그래서 조금은 무뚝뚝해 보입니다. 지하철 역무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스물아홉의 현주는 7년 동안 소훈의 프로포즈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에 추호의 의심도 없던 두 사람 앞에 유명배우 은다영이 갑작스레 끼어듭니다.

연예인인 자신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한 사람처럼 대해주는 소훈에게 끌린 은다영은 적극적으로 소훈에게 다가서고 현주는 그런 은다영이 내심 못마땅해 보입니다. 오총사들과 함께 은다영 떼어내기 작전에 돌입하지만 오히려 소훈은 은다영에게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영화의 결말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다른 영화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영국 수상과 뚱뚱한 식음료 담당 비서가 사랑에 빠질 거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영화를 보는 건 결말도 중요하지만 영화 그 자체, 그리고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더 재미있고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련이 어떤 모습으로 닥치는지, 그 시련을 어떻게 넘어서는지,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감초 같은 주변 인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때론 주인공들보다 주변인물들이 더 매력적이기까지 하니까요.

거기에 영화 내내 등장하는 간접광고 때문에 나중엔 짜증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소훈이 다니는 회사야 그렇다 쳐도 시도 때도 없이 튀어 나오는 광고판이며 티비광고들을 보고 있자니 영화를 보러 온 건지 광고를 보러 온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습니다. 좀 더 은근하게 처리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망했던 것들을 꼬집어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볼 때 얼마나 편하고 느긋하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어쩌면 <내 남자의 로맨스>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 더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은 걸 바랬거나. 괜찮은 영화였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