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코스는 경복궁과 남산, 인사동으로 잡혔다. 지역경제과 직원 한사람 당 근로자 4,5명씩 배정돼 '관리책임'이 부여됐다. 모두 초면이고 근로자들이 대부분 연수 초년생들이라 염려하며 출발했다.

근로자들 대부분은 베트남, 필리핀, 몽골, 태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카자흐스탄, 중국 등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온 산업연수생들로 20대였다.
 
44명 인원을 최종 점검하고 두 대의 관광버스에 나눠탄 일행이 9시 10분쯤 공설운동장을 출발해 경복궁에 도착하니 10시. 때맞춰 북소리에 맞춰 행보하는 문지기 교체식을 참관할 수 있었다. 민간인 경복궁 지킴이 한 분이 일행의 경복궁 안내를 자청했다. 영어를 병용해서 안내했지만 숫자가 많은데다 확성기 소리도 작아서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주변의 높은 빌딩들과는 대조적으로 낮은 기와집과 흙 마당, 파란 하늘이 조화를 이룬 넓은 궁궐 곳곳에서 카메라 렌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사진 찍기에 열심인 이들을 보며  중고교 시절 수학여행이 떠올랐다. 어떤 의미가 깃든 유적지에 갔지만 역사성보다 사진 속 친구들 모습이 더 그려지는 그 시절.

1시간 40분 정도 경복궁에 머물다 남산으로 이동하며 공무원들은 우리말이 서툰 근로자들이 행여 일행을 잃고 헤멜까 점점 걱정이 더한 표정이었다. 고궁보다 인파가 더 많은 인사동 나들이 일정은 유보하자는 의견이 논의됐다. 남산 입구 음식점에서 설렁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포근한 날씨에 삼삼오오 짝을지어 사진을 찍으면서 친밀감을 확인한 젊은이들이 빨간 김치 깎두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식사 후에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 서울타워 3층 전망대에 올랐다. 근로자들은 원형 유리마다 현 위치에서 자신의 나라 이름 방향과 거리를 알리는 유리창 안내문을 찾아내고 신기한 듯 앞다퉈 사진을 찍고 그림 지도를 펴들어 앞서 둘러본 경복궁을 찾아보는 등 여유를 보였다.

스물 세살 베트남 청년 뚜웬은 "좋아요", "또 와요" 서툰 우리말로 다시 오고 싶다는 기분을 표현했다. 쿠웬은 떠듬떠듬 한글을 읽으며 "공부해서 다시 오고 싶다"고 웃었다.  타워를 내려와 팔각정 아래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는 경복궁에서 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생처럼 아들처럼 살뜰히 팀원을 보살핀 공무원들은 길을 잃을지 몰라 유보한 인사동 나들이를 결행키로 했다.

인사동 인파 속을 걸으며 호떡이나 엿, 떡볶이와 어묵 등으로 군것질의 묘미를 즐기고 거리 공연을 기웃거렸다. 무료 전시회에 들러 눈요기도 했다. 두 시간여 인사동 거리를 돌아나온 근로자들의 표정은 서울 타워에서와는 또 달랐다.  

저녁 5시 30분 김포에 들아와 굴비정식으로 저녁 식사까지 함께한 이들은 시청이 왜 이런 서비스를 하는지 궁금해 하다 취지를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워했다. 대부분은 이런 기회가 또 마련된다면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해서 다시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리나라에 온지 2년됐다는 중국교포 최하자씨와 최귀복씨는 의사소통에 별 무리가 없는 상대였다. 그들은 3년 체류 만기가 도래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경복궁에서 안내자가 우리말로 설명했으면 잘 알아 들었을텐데 영어로 해서 오히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경복궁에 대해서 알아보고 친구들과 다시 한 번 가고 싶다"고 했다. "이런 관광을 하게 된 것은 행운이고 기회를 준 분들이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않았다.

"여러분의 건강한 한국생활을 기원한다"는 박현진 과장의 건배 제의 속에는 유럽과 중동 등에 젊은이들을 파견해 경제 기반을 다진 과거 우리의 초상이 겹쳐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위상은 경제력 순위라는 걸 인정해도 이들이 김포에 머무는 동안만은 경제력과 무관한 행복지수가 충만하길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