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마리안 수녀, 마가레트 수녀다. 두 분은 1962년 우리 한국에 와서 장장 43년 동안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며 환자 가정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일로 한평생을 보내다가 이제는 자신들의 연령이 고희를 넘겨 더는 봉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자신들이 한국의 다른 분들에게 누를 끼칠것 같은 생각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환송식까지 부담스러워 몰래 편지 한 장 써놓고 20kg짜리 가방 하나 챙겨들고 2005년 11월21일 소록도를 떠나면서 죽도록 봉사하지 못한 것이 죄송해서 여수 앞 바다를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다는 내용의 기사다.
 
나는 평소 수녀들이 사회봉사를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처럼 자신들의 삶 전체를 희생해가면서 봉사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분들은 이미 한국을 떠나 그들의 조국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변방의 작은 둥지에서 조용히 생활하고 있겠지만 나는 이제사 그녀들이 바로 천사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이 기사를 메모한 후 내가 평소 잘 알고 있는 오스트리아출신 간호사 한 분에게 이 수녀님들을 알고 있는가고 물었더니 신문기사가 나오기 전에 자신은 먼저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 분은 한국을 떠난 두 분의 수녀님들보다 1년 먼저인 1961년 4월, 오지리잘츠버그 도립병원 간호사로 일하다가 나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한국에 와서 경북 고령 등 나환자촌에서 일했고, 서독 구라(求癩)협회 주한대표직 등을 맡아 44년 동안 환자치료에 한평생을 보내고 있는 분이다.

나는 이분에게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대뜸 물었더니 "한국이 고향인데 왜 갑니까? 한국에서 살다 한국에서 죽어 한국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 아직도 한국에서 자기가 해야할 일이 많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것 같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 건강한 사람도 먹고 살것이 없어서 목피초근으로 연명했던 시절, 바로 그때 살기 좋은 나라 오스트리아를 뒤로 하고 한국에 와서 우리가 혐오하고 기피하고 저주했던 환자들촌에 들어가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치료하는 일로 44년을 보내신 이 분 또한 천사임에 틀림없다. 이분은 그동안의 공로를 높이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고 세계도덕재무장회의(M.R.A)로부터 도덕대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분은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너무 꺼리는 성격 때문에 익명으로 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첫째는 그들의 깊은 신앙심이며 둘째는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가 그들로 하여금 비범한 삶을 살게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난 책이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魔의 山 ; Der Zauberberg)’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토마스 만은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독일출신 작가다. 그는 독일 북부 뤼벡에서 태어났고 12년에 걸쳐 ‘마의 산’이라는 소설을 완성해 세상에 내어놓음으로 유명해졌으며 1929년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이라는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토마스만은 1955년 8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지금 소개한 세 분의 여성들은 성장과정에서 토마스 만의 영향을 누구보다 많이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의 청소년기에 토마스 만의 작품이 많이 나왔고 이 여성들이 대학을 나온 즉후에 토마스 만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아서도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마의산’을 그 실례로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이 책의 이름이 된 마의 산이란 산 이름이 아니다. 스위스 고산지대에 있는 다보스라고 하는 소읍에 있는 베르크호프라고 하는 폐결핵 요양소의 이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24세의 혈기왕성한 독일청년이다. 그는 조선 기사 시험에 합격하고 함부르크 조선소로 가기 전에 이 요양소에 수용되어 있는 사촌형 요아힘을 병문하기 위하여 3주 동안 같이 있을 계획으로 이 곳에 왔다.

요아힘은 사관후보였으나 결핵으로 이 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이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 러시아 여인으로 이 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 쇼샤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쇼샤는 푸른 눈을 가진 매혹적인 여자였다.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쇼샤를 보는 순간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혔고 점점 사랑에 빠져들어갔다. 그래서 한스 카스트로프는 세월가는줄 모르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폐결핵에 전염되어 7년 동안 이 요양소에서 젊음을 보내야만 했다.

이 곳에서의 7년 동안은 삶과 죽음이 수없이 교차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는 이 곳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병이 완치되어 가는 즈음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래서 그는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징집되어 참전하게 된다. 밤잠을 자지 못하고 진흙탕길을 행군하면서 그는 전쟁의 무서움을 체험한다.

마의 산에서는 몸속에 침투해 있는 적들과 싸워야 했고 이번에는 몸 밖에 있는 적들과의 싸움이었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없이 방황해야만 했다.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이 전쟁터에서 삶의 중요성을 또한번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의 설(雪)의 장에서 주인공은 스키를 타다가 쓰러져 또한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그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서 자기 사고(思考)의 지배권을 죽음에다 내맡겨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깨닫게 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삶의 가치에 대하여 일깨워주고 있다. 절망적이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삶은 지켜져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그 이유는 사랑과 선을 위해서요, 또한 삶을 지키는 일이 가장 큰 사랑이요 선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다.

이와같은 토마스 만의 소설이 유럽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사회에서 자라난 청소년이라면 한번쯤은 세 천사들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평생 두벌의 옷과 샌들 한 켤레로 만족하면서 인도 사람들을 섬긴 마더 데레사 수녀보다, 우리가 하지 못한 일들을 우리 땅에서 대신해준 세 천사들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저에게 아주 어렵게 썼습니다. 한편은 사랑의 편지이지만은 한편은 헤어지는 섭섭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떠나는 것에 대해 설명을 충분히 한다고 해도 헤어지는 아픔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겁니다. 각 사람에게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되겠지만 이 편지로 대신합니다. 마가렛은 1959년 12월에 한국에 도착했고 마리안나는 1962년 2월에 와서 거의 반세기를 살았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간호로 제일 오랫동안 일하고 살았습니다. (천막을 쳤습니다)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현재 우리는 70이 넘은 나이입니다. 소록도 국립병원 공무원들은 58세~60세 나이에 퇴직합니다. 퇴직할 때는 소록도에서 떠나야 되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 건강이 허락이 될지 몰라 이곳을 비워주고 다른 곳에 가서 사는 것은 저희들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우리 나이가 은퇴를 지나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사회복지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우리는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없어도 환자들에게 잘 도와주는 간호사들이 계셔서 마음놓고 갑니다. 옛날에는 약과 치료품들이 많이 필요 했을 때 고향에서 도움을 받아 도와 드릴 수 있었습니다. 현재 소록도는 여러 면에서 발전되어 환자들은 많은 혜택을 받고 있어서 우리들은 아주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가끔 저희가 충고해주는 말이 있는데 그 곳에서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보는 당신에게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우리는 부족한 외국인으로써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 곳에서 같이 지내면서 저희에 부족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을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큽니다. 그 큰마음에 우리가 보답을 할 수 없어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감사해 주실 겁니다. 항상 기도안에서 만납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리안나 올림/마가렛 올림 소록도 2005년 11월 22일 Heimatadresse Margreth Pissarek Brandjochstrasse Nr.9 A-6020 Innsbruck Austria Europe Marianne Stoger Zieglstadl 34 A-6143 Matrei / Brenner Austria Eur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