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누구나 버림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나를 지켜주고 감싸줘야 할 누군가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버리고 갔을 때, 우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12살의 소년 아키라는 달랐습니다.

도쿄 변두리의 작은 아파트에 젊은 엄마와 아들 아키라가 이사를 옵니다. 아이는 아키라밖에 없고 아이의 아빠는 외국에 출장 중이라고 소개를 했지만 이삿짐 안에 있는 커다란 가방 속에서 아키라의 두 동생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사를 마칠 동안 근처 공원에서 기다리던 둘째 교코까지, 아키라의 가족은 모두 다섯 명입니다. 아버지가 모두 다른 네 아이들을 기르는 철없는 엄마는 집주인에게 쫓겨날까봐 아이들을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도 다섯 식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의 엄마는 일 때문에 오사카로 간다면서 아키라에게 어린 동생들을 맡기도 집을 떠납니다.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던 아이들의 선물을 사들고 불쑥 돌아옵니다. 옷가지를 챙긴 엄마는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도 다시 집을 나서고,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를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장남 아키라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동생들에게 엄마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동생들을 챙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주고 간 돈도 바닥나고 집에는 밀린 세금 고지서들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아키라와 동생들은 여전히 엄마를 기다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갑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해가 바뀌지만 여전히 엄마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없고 아이들은 조금씩 지쳐갑니다. 늘 의젓하고 동생들을 살피던 아키라도 동생들 보다 친구들과 더 가까이 보내고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게임에 열중하기도 합니다. 아키라의 동생들도 짜증을 내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립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실제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입니다. 그 누구도 몰랐던 엄마에게서조차 버려진 아이들이 그들에게 닥친 엄청난 불행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본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는 그저 아이들의 모습을 담담히 보여줄 뿐입니다.

가방 속에 담겨서 새 집에 이사 온 아이들은 밝게 웃으며 가방 속에서 뛰쳐나오고, 일 때문에 늦는 엄마를 대신해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합니다. 한 달이 넘도록 엄마가 돌아오지 않지만 누구도 투정부리지 않고 보통 때처럼 지냅니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그런 아이들을 도와주지 않는 어른들의 무관심한 모습을, 그리고 아이들을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한 분노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힘들어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무관심한 어른들의 모습도, 그리고 무책임한 엄마에 대한 비난도 볼 수 없습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아이들의 모습만 보여줄 뿐입니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조용하고 담담한 영화를 보면서 그 어떤 충격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고, 그 어떤 상처보다도 깊은 상처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진 현실이지만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아이들은 전혀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어제와 똑같이 공원에서 물을 받고, 편의점에서 유통기간이 지난 김밥을 얻고, 공중전화에 남겨진 동전을 주워서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 뒷모습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슬픔이나 연민보다도 깊은 울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