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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서울남부지방법원 이모 판사가 종교적 신앙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다가 병역법 위반죄로 기소된 모종교집단의 신자들에게
전예없이 무죄를 선고함으로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바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서울남부지방법원 항소부에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였고 피고인이 상고를 포기함으로 형이 확정되었었다.
그동안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도 모두 유죄였고 그 이유는 국방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5년 12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서 이들이 군복무를 다른 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하라고
국회의장과 국방부장관에게 권고안을 냄으로써 또한번 충격을 주었다.
이 권고안이 지금까지 나온 대법원의 판결과 상충될 뿐만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대로라면 유사시 군대는 누가 가며 국방은 누가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양심을 가장한 병역기피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것인가 하는 문제도 풀기 어려워 보인다. 이같은 문제에 앞서
특정 종교를 믿는 신자들의 병역거부가 국가인권위원회가 보는 것처럼 정당한 양심행위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몇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첫째, 인간의 양심은 완전한가 하는 문제이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本性)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양에서는 순자(荀子)의 경우 성악설(性惡說)을, 맹자(孟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으며 석가여래는
공허(空虛)라고 했다. 서양에서는 루소의 경우 인간은 본래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하다고 했고 태어날 때는 선했지만 성인의 풍습과 관습에 오염됨으로
악하게 된다고 하였다.
토마스 홉스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이 공동의 주권자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를 자연상태라 하고 이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서 그
안에서의 삶은 고독하고 가련하며 야만스럽다고 가정하고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추론하였다. 쇼펜하우어 역시 죄악이 인간본성 가운데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제거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기독교는 인간이 본래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아담이 범죄함으로 그 후손은 모두 죄성에 오염되어 있고
인간의 양심은 전적으로 부패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거듭난 양심이라도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도덕적으로 이탈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같은 여러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양심이란 선천적으로 선하다고 해도 후천적으로 완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공통적 견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양심의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볼 때 양심의 판단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자기감정,
자기의지, 자기 가치관, 자기 생활철학, 자기 국가관, 자기경험 같은 것이 판단의 규준이 된다. 그리고 종교인들의 경우에는 그가 믿는 종교의
교리나 신념 등이 중요한 판단의 규준이 된다. 문제가 되고 있는 병역거부자들 역시 그들이 믿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이 병역거부의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무조건 전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세상에 선악이 공존하고 있는 한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불의한 전쟁도발자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정당방위까지 죄악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심적 판단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이성(理性)과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엇이 양심적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막연히 양심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성에 합치되지 않는
것은 올바른 양심이라고 할 수 없다. 양심과 이성은 각각 다른 기능을 갖고 있지만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셋째, 정당하지 못한 양심까지 보호해야 하는가?
법은 정당하지 못한 개인의 양심까지 보호해야할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집단은 병역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수혈을 거부하고 국가체제를 사단으로 간주하고
모든 종류의 투표에 참가하지 않으며 공직에 취임하는 것까지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국기에 대한 경례 및 애국가 봉창까지 거부하는 종교집단이다.
이처럼 시민으로서의 양심에 대한 의식이 부재하고 오로지 왜곡된 신앙양심에만 의존하는 이들의 편향된 양심까지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인가는 심각히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국가라고 하면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신앙과 양심을 보호하는 일은 국방을 하는
일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국민의 선량한 양심을 짓밟는 국가나 정부는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양심의 진정성이다. 참된
양심은 그 내심의 양심이거나 양심 자유의 표현이든지 간에 어디까지나 그것은 이성과 합치해야 하고 전통적 신앙과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의
선에서 크게 어긋남이 없어야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입법 역시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적 원칙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지 문제가 되고 있는 특수
종교인들만을 위해 만들어진다면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헌법정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또다른 논란거리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무리하게 대체입법을 해서 우리의 법체계를 무너뜨리고 저들의 편향된 신앙행태를 인정해 주는 결과를 초래케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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