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유적지를 방문하기 전 모두들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버스에 앉아서 떠들거나 노래를 듣거나, 과자를 먹으며 항일운동 유적지 설명서는 본체만체 하였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조용히 설명서를 펴 보았다. 교회 안에 사람들을 가둬 불태운 사건, 갓난아이까지 찔러 죽인 일제의 잔인함에 소름이 돋았다. 아이들에게 내용을 이야기하자 하나 둘씩 설명서에 빠져들었다.

일제 만행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화성제암리 사건은 교회에 주민들을 불러 모아서 입구를 막고 불태운 악명 높은 사건이었다. 교회당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을 정도로 주민들을 철저하게 피살하였다.

묘 앞에 헌화를 하고 짧은 묵념을 할 때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후에 기념비와 교회를 올려다보았다. 예전에 그 모습은 불에 타 없어졌지만 그분들의 혼만은 그곳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유적지와 전시실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수업장이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을 직접 보고,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보다 깊은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강점기 당시 감옥 중 최대규모(?)의 애국지사들의 집합소였다. 그곳을 거쳐 간 애국지사들만 4만여 명인데 일제가 패망할 때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불태워 버려서 지금은 100명밖에 알 수 없다고 한다.

색이 바랜 벽돌 건물과 늘어진 버드나무가지, 담쟁이 넝쿨과 더불어 대비되는 파란 하늘은 그곳의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날이 추워서 발이 많이 시렸는데 이곳에서 난방도 없이 겨울을 나셨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전시실 안을 살펴보며 일제의 가혹한 고문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모진 고문을 당하며 옥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중에 우리 고장의 애국지사 분들도 계셨다는 게 자랑스러웠고 나 보다 한 살 많은 유관순 언니가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옥중에서도, 재판장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다니 존경심이 절로 일었다.

수업시간 중 ‘만약 우리나라가 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몇 아이들이 이민을 가거나 유학을 가면 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요즘, 아이들 뿐 아니라 많은 어른들까지 나라가 망하면 도망칠 궁리만 하며 진정한 애국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와 같은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다가는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을 다시 한번 맞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잃은 나라를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애국지사 분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철없음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라는 말이 있다. 일본이 우리에게 끼친 만행을 용서하기는 어렵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를 팔고 우리 민족을 망치는데 앞장섰던 매국노들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챙겨서도 안 된다.

요즘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배아줄기세포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성과주의와 국익 우선주의로 황교수를 영웅으로 만든 우리이다. 국익 우선주의가 애국심이라는 명분 아래 포장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사회를 돌아봐야 하겠다. 더불어 애국지사들의 수많은 노력과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건강한 사회와 깨끗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