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너 혜진이 맞아? 웃네. 다 나은 것 같구나."

정신지체로 장애인주간보호센터가 돌보는 혜진이는 지난달 20일 부천 세종병원에서 심장 재수술을 받았다. 지난 주엔 중환자실에 있다고 해서 '일반병실로 옮기면 찾아봐야지' 했는데, 2일날 퇴원한다는 소식은 뜻밖이었다.

정말 2주만에 만난 혜진이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알고지낸 사이처럼 반겼다.

하지만 환자복에 가려졌던 혜진이의 가녀린 가슴은 20센티미터 정도의 거친 수술자국이 선명해 그 동안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울 줄 모르는 아인 줄 알았어요. 병실에 와서는 인사도 잘하고, 잘 참고, 잘 먹고, 말을 잘 알아들으니까 모두 자기 아이처럼 돌봐주셨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아빠한테 좀 서운한 게 있었던지 저녁에 퇴근하려는 저를 가지말라고 잡고 울더라구요. 우는 거 처음 봤어요."

병치레 많았던 자녀들 때문에 간병인 일을 자원했다는 이경숙씨는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혜진이와의 헤어짐이 아쉬운 듯 "혜진아, 이제 병원에 오지 말고 건강해라"며 혜진이를 어루만졌다. 나눔 자활기관에서 파견나온 간병인 이경숙씨는 혜진이 덕분에 "좋은 분들 많이 만났다.", "그들의 기도가 혜진이 회복에 영양제가 된 것 같다"면서 혜진이와의 인연을 귀하게 여겼다.

심장병 수술 환자 여덟명이 함께쓰는 병실에서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고통이 생생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혜진이는 퇴원을 감으로 느끼는지, 소독을 마치자 얼른 환자복을 벗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힌 뒤 혜진이에게 이 원장은 "야, 이혜진, 어리광 많이 늘었네.혼자 신어봐" 양말을 건넸다. 혜진이는 한 번 더 웃었다.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통해서만 잠시 엄마의 온기를 훔칠 수 있는 아이 같아 목이 멨다.

병상을 내려온 혜진이는 분홍 모자에 아빠가 선물했다는 배낭을 메고, 선물받은 곰인형을 아기인 양 받쳐안고는 손을 흔들며 병실을 나서 같은 방 환우들의 부러움을 샀다.

퇴원 수속을 마친 조선희 원장은 당분간 정기적으로 통원치료 하고 평일엔 센터에서 돌보면 되지만 집 환경이 너무 어려워서 아빠와 지내는 주말과 휴일이 걱정이라며 혜진이에게 필요한 약품들을 별도로 구입해 챙겼다.

"혜진이 아버지, 내일부터는 꼭 센터에 보내셔야 돼요."
병원 밖에는 장애인들의 자활을 도와 묵묵히 사랑을 전파하는 밀알 선교단 이성규 목사가 자원도우미들과 함께 혜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자리 아빠자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성인들의 역할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공기처럼 항상하는 삶의 고마움을 곧잘 잊는다.
'혜진아, 너의 가슴 상처도 잘 아물거야. 좋운 기운을 전해주는 고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한 아줌마도 기도를 보탤께. 우리사는 세상, 너의 웃음처럼 순해지기를, 따뜻해지기를…'

*혜진이는 경제활동이 곤란한 아버지와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 의지해 살아갑니다. 도움 주실 분은 주간보호센터로 직접 연락바랍니다. (☎ 031-983-4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