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을 고집하는 남자 돈(빌 머레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애인인 쉐리(쥴리 델피)가 이별을 통보합니다. 쉐리는 더 이상 정부처럼 지내는 건 못견디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겠다는 말을 하고, 돈은 그런 그녀를 잡지 않습니다. 쉐리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담담하게 텔레비전만 보던 존에게 분홍색 우편물이 도착합니다.

보낸 사람의 이름도 주소도 적혀있지 않은 그 편지는 바로 돈의 옛 애인이 보낸 편지. 거기에는 돈에게 그동안 숨기고 있던 열아홉 살의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아버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들의 엄마가 누군지 짐작초자 할 수 없는 돈에게 옆집에 살고 있는 윈스턴은 옛 애인들을 찾아서 누가 아이의 엄마인지 밝혀내라고 재촉을 합니다. 결국 돈은 윈스턴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옛 애인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동안 돈이 사랑했던 여자들은 모두 다섯 명, 이미 세상을 떠난 한 명을 제외한 네 명의 주소만 들고 여행을 떠난 돈은 뜻밖의 모습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조금 이상한 딸과 살고 있는 여전히 매력적인 로라, 예전 히피족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이 변한 조용한 부동산 중개업자 도라, 변호사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동물 의사소통가라는 생소한 일을 하고 있는 카르멘, 무엇 때문인지 여전히 돈에게 화가 풀리지 않은 페니, 그리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페페까지. 돈은 네 명의 여자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와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 <브로큰 플라워>는 지난 사랑을 찾아 나선 중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사업에 성공해 남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는 돈은 독신주의자입니다. 아이가 다섯에 직장을 세 군데나 다니고 있는 윈스턴을 보면서 아마도 돈은 저렇게 살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돈에게 날아온 핑크색 편지봉투와 그 속에 들어있는 타자기로 친 글을 보고 자칭 아마추어 탐정인 윈스턴은 옛 연인들을 찾아갈 때 반드시 분홍색 꽃다발을 들고 가서 그녀들이 분홍색을 좋아하는지, 타자기가 있는지 살펴보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돈의 옛 연인들은 모두 분홍색을 좋아하거나 분홍색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동안 돈은 까맣고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들은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과거의 연인들과 마주하면서 돈은 자신이 그녀들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로라, 부유한 중산층이 됐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도라, 잘 알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아무 것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었던 카르멘, 여전히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인 페니, 결국 돈은 죽은 페페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과연 돈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정말인지 알 수도 없는 아들이 있다는 편지 한 통 때문에 돈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옛 연인들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모든 것은 돌고 돌아 마지막엔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돈의 과거를 찾는 여행이 끝나갈 무렵엔 과연 돈의 아들의 엄마가 누구인지, 아들이 정말 있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조금씩 사라져갑니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삶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여기 있는 건 현재 뿐이고, 이게 전부라는 그의 말처럼 그에겐 이제 더 이상 과거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