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은 모두 자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힘든 군 생활을 했고, 무시무시한 일들을 겪고,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제대를 했다고 말합니다.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군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어쩌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어린아이 취급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군대에 관한 제대로 된 영화는 별로 없었습니다. 전쟁영화라면 많이 있었지만 현실 속의 군대생활에 관한 영화는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마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대학졸업반인 젊은 감독이 그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윤종빈 감독의 졸업 작품인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부산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여러 상을 수상했고 일반상영관 개봉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제대로 된 군 생활을 해온 말년 병장 태정의 내무반에 초등학교 동창인 승영이 전입을 해옵니다. 상관의 군화에 매일 물광을 내야하고, 고참이 신참의 속옷을 뺏어 입어도 뭐라고 할 수 없고, 신참은 고참에게 슬리퍼까지 가져다 줘야 하는, 군대에서는 당연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승영 때문에 태정의 말년 생활은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승영이 계속 문제를 일으켜도 태정은 친구라는 이유로 승영을 감싸주지만 자신까지 곤란한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서 태정은 전역을 하고 승영도 어느덧 후임병을 두게 됩니다. 승영은 태정이 자신을 감싸줬던 것처럼 후임병 지훈을 감싸주지만 그럴수록 다른 고참들은 승영과 지훈을 따돌리고 지훈 조차 승영에게 제멋대로 대하게 됩니다.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승영은 어느덧 자기가 이해하지 못했던 다른 고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잘해 주리라고 다짐했던 지훈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역한 태정에게 휴가를 나온 승영이 찾아옵니다. 승영은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야기는 하지 않고 태정을 붙잡아 두고, 그런 승영의 모습에 화가 난 태정은 승영을 뿌리치고 돌아섭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면서 잊고 있었던 군대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자꾸 몸을 뒤척일지도 모릅니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승영이 어느새 태정이나 다른 고참들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됩니다. 태정과 승영이 있던 내무반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멍청하리만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나름대로 당근과 채찍을 잘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래서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인물들입니다.

군대, 남자라면 한번쯤은 다녀와야 할 곳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피할 수만 있다면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남자라면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들을 하지만 ‘사람이 되는’ 건 모르지만 ‘사람이 변하는’ 건 확실해보입니다. 그 변화가 과연 바람직한 변화인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과연 누가 ‘용서받지 못한 자’인지, 과연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할지, 그리고 왜 용서를 받아야 할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잊고 있었던 군대시절 꿈을 꾸고 씁쓸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