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새로운 상품뿐만 아니라 생소한 신조어(新造語)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어 그 용처나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해야 할 때가 많다. 삼무주의란 말도 그 중에 하나다.

나는 최근에 발간된 김포 YMCA 정인국 회장의 자서전 겸 에세이집 “아름다운 흔적”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 보면 조한승 김포문화원장께서 쓰신 추천사와 함께 정인국 회장의 선친 되시는 정준 선생님(오른쪽 사진)에 대한 주옥같은 추모의 글이 올라와 있다. 이 글에 보면 고 정준 선생님은 삼무주의자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자기 이름으로 된 땅이 없고, 집이 없고, 예금통장이 없었다고 해서 삼무주의자라고 하는 닉네임이 붙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정준 선생님이 김포 출신 제헌 국회의원이요 4선의 관록을 가진 유명한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분이 삼무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말이다. 국회의원 한 번만 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재물을 모은다는게 한국의 정치판인데 4선 의원이 삼무주의자였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나 그분의 청렴성은 이미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했다.

나는 공직자가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경하지는 않는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가 청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청렴하다는 말은 가난하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나는 이같은 공직자가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반면에 공직자가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증오할 것도 아니다. 사람의 능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정 축재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자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극단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공직자가 어떻게 재물을 축적했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공직자의 청렴성을 논할 때 중요시해야 할 것은 공직자가 재산을 얼마나 소유하는 것이 적정한가 이다. 나는 해마다 한 번씩 발표하는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내역을 주의깊게 살펴본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재산은 어느 정도일까? 재산순위 1위는 2,611억 9,100 만원이고 꼴찌인 294위는 -5억 4,500 만원이다. 그러면 중간쯤은 얼마나 될까? 150위는 6억 5,800 만원이다. 이를 평균치로 내어 보면 국회의원들의 재산보유액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평소 공직자가 너무 많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국민들의 소득수준에 따라 적정수준을 유지해야 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재산을 적정수준 이상으로 소유한 공직자라면 솔선수범해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직자라고 해서 탁발승과 같이 생활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공직자는 모름지기 국민과 함께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동참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고 하였고 “내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 옮겨본다면 나는 다른 사람이 모두 아파트를 가지기 전에는 아파트를 가지지 않겠다는 말이고 나는 모든 사람이 승용차를 가지기 전에는 승용차를 가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한 평생 고무신 한 켤레도 없이 맨발로 걸어 다녔고 1931년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 2차 원탁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면서도 그의 소지품은 물레와 교도소에서 사용하던 밥그릇과 염소젖을 담은 깡통과 낡은 요 포대기 몇 장과 수건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몸소 체험하면서 살았다는 점에서 지금도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지금 현대인들은 무한 소유를 위해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 유한한 물질을 무한으로 소유하겠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허망한 탐심이다. 또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엄연히 능력의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작위로 무한경쟁을 해야한다는 것은 약육강식의 논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처절한 경쟁에는 탈락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이 경쟁사회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고위 공직자들부터 간디의 절제된 삶과 정준 선생님의 삼무주의 정신을 조금은 본받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