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처럼 배추가 대접을 받았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배추를 직접 기르는 가정이 늘어났다. 여름에 텃밭이 생겨서 뭘 심을까 고민하던 중에 김장배추를 심기로 했다.

아내는 농사지어야 손해만 난다고 극구 말렸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삽질을 하고 비료를 사고 퇴비를 갖다 부었다.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라 힘도 들고 농기구 사랴 씨앗 사랴, 이것 저것 돈도 제법 들었다. 

처음에는 배추벌레 방아깨비의 극성에 농약을 안 칠 수 없었다. 하지만 제발 농약 치지 말라는 아내의 성화에 벌레가 생기거나 말거나 내버려두었다. 곧 중국 김치에 기생충 알이 발견되고 배추 값이 금값이 되고 배추 도둑 성화에 농민들이 잠을 못자는 있다는 뉴스에 우리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텃밭이 인가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라 고민 끝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을 치기로 했다. 고생 끝에 말뚝을 치고 줄을 띄웠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밭에 둘러서 “오늘도 잘 계신가?”하고 '문안'을 드렸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경계말뚝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흔적으로 보아 차는 들어 왔었는데 다행히 배추는 그대로 있었다. 가장자리에 있는 한포기만 뽑혀 있는게 아닌가? 아마 며칠 전에 뽑은 듯 시들어 있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속에 새까만 진딧물이 꽉 차 있었다.

아하 이 진딧물이 우리 배추를 지켜주었구나! 말뚝 안쪽으로는 그래도 괜찮은 것들이 제법 있었다.
부러진 말뚝 대신 주섬주섬 돌을 갖다 놓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해마다 김장을 늦게 하였는데 올해는 배추가 없어지기 전에 일찍 하자”고 한다. 맘 놓고 텃밭도 못 가꾸는 세상이 되었으니…

누구 말처럼 이렇게 써놓을까?
“농약을 쳤으니 보름 후에 가져가라”든지, 아님 “우리 가족 병원비에 쓸 배추”라든지. 궁색한 거짓말까지 동원해 배추를 지켜볼까? 에이 차마 사먹을 돈이 없는 사람이 가져가면 도리 없지 뭐.

내일 배추 뽑으러 가는 날이다. 웬일인지 로또 맞출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진딧물아, 오늘 밤만 잘 지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