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처음 교회를 갔을 때였다. 막 문을 열자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찬송가가 들려왔다. 첫 날부터 지각생이 된 건 불성실한 신앙생활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늘 죄의 영향권에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내 양심도 그러했음을 교회에 와서는 더욱 부인할 수 없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잘못이라기 보다는 실수이길 바랬던 일들을 헤아렸다. 아무렇지 않게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일이라면 나는 분명 죄 하나를 지은 것이다. 찬송이 끝나고 성경봉독 차례가 되어서야 옆자리를 봤다. 내 또래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코드가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태초에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했다. 첫째 날에는 빛을 만들고 둘째날, 셋째 날을 지나 여섯째 날에는 당신의 형상과 똑같은 남자를 만들었다.

처음 아담의 친구는 동물이었다. 하느님이 보기에 그런 아담이 외로워 보여 다시 갈비뼈를 떼어 여자를 만들었다. 그 여자 이브는 아담의 특별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열매 중에 한가지만 따먹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나무는 착한 것과 악한 것을 알게 해주는 열매이기 때문에 절대로 먹어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뱀이 놀러와 맛있는 열매라고 부추기자 그만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화가 난 하느님은 죄의 판결로 두 사람에게 저주를 내렸다.

아담에게는 평생 땅 위에서 땀을 흘리며 살아야 하는 '일'의 저주를 내렸다. 그리고 이브에게는 해산의 고통과 남자를 사모하라는 '사랑의 저주'를 내렸다. 생리 구조상 자신의 욕망이 끝나면 그만인 것이 남자이다. 그러나 여자는 그 휴우증의 사모라는 것인지… 평생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운명 때문에 보편적 세상의 여자들은 남자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나는 어떤 저주를 받았을까! 아이를 낳을 때마다 고통의 극치란 전기에 감전된 사고 같은 것이었다. 전생의 죄가 무엇이었기에 이렇게 아픈 걸까!! 통증의 와중에도 머리로는 죄를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해산의 고통은 까마득히 잊고 나는 또 예쁜 아이를 보면 낳고 싶어한다.

어쩌면 내가 받은 저주는 해산의 고통이 아닌 상대를 사모하는 '사랑'이라는 저주인 것 같다.
나는 늘 사람이든 사물이든 '사랑'으로부터 출발한다. 좋은 점 한가지만 알게 되어도 상대를 신뢰하고 이해해야 한다.

한때는 남자의 눈물을 믿은 적이 있었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말에 사랑해서 안된다며 주룩주룩 흘리던 남편의 눈물을 순수하게 믿은 것이다.

결혼을 하고 귀가 시간이 늦어질 때 그 기다림의 시간이란 시계바늘의 음직임보다 섬세하고 지루했다. 그 옛날의 눈물의 언약은 그가 마시는 한 잔의 술속에서 휘청이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이 의무라는 쪽으로 더 깊어졌음을 남자보다 몇 곱절 사모의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할게 되었다.

탤런트를 좋아하고 주인공이 되는 상상은 다음 방영시간까지의 나를 좀쑤시게 만들었다. TV속의 연인에게 사모라는 외로움을 자연스럽게 기댈 수 있었지만 그런 취미로도 내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다가 온 문학이 '사랑'일 줄은 몰랐다. 그것은 외형이 없는 것이라서 마음을 빼앗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써야 하는데 그럴수록 도망도 함께 다니던 그 사랑은 어느 날 온전히 저의 노예로 나를 굴복시켰다.

보이지 않는 이끌림은 달콤하지도 않으면서 내 마음을 점령했다. 한번도 믿어본 적 없는 잘 쓰지 못함의 아픔이 겨울날의 살얼음처럼 가슴에 선연히 창살을 만들어 갔다.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잊어버릴 수 없는 저주 하나를 하느님에게 특별히 받은 것이다.

설교가 끝나자 헌금이 이어지고 주보란에 쓰여 있는 교회소식이 들려왔다. 꼼꼼히 읽어주는 목사님의 말씀 속에 하느님이 계신다고 알고 있지만 가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느님보다는 목사님과 더 믿어야 할 것 같음에...

교회의 일꾼은 주의 종이라 쓰여 있다. 그들을 통해 하느님과 가까워져야 함에도 간혹 그들로 인해 하느님과 멀어지는 안타까움은 신앙에 대한 갈등까지 불사하게 한다.

나와 그녀는 그렇게 성스러운 교회에서 만났다. 예배가 끝나자 나를 안내한 구역장이 다가와 서로 인사하라고 소개시켰다. 우린 알고보니 같은 구역이었다. 인사를 하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으로 제공되는 잔치국수를 말없이 먹고, 커피도 함께 마셨다. 그녀와의 인연에서 나는 어느 날 완성된 코드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내 옆의 한 여자와 뭔가 맞을 거 같은 예감의 실체는 그것이었다. 덧없는 봄날의 꽃잎처럼 그녀 역시 믿은 사랑을 잊어야 했음을… 늘 사랑에 빠져도 사모의 저주가 그녀를 괴롭혔음을…

나처럼 해산의 고통도 잊었는지 그건 묻지 않았다. 단지 목적이 먼저인 남자는 사랑없이도 섹스를 한다는데 여자는 그 한 번의 사랑을 너무 오래 믿어버려서 탈이다.

하느님이 절대 안된다고 과일을 따먹고 아담과 이브는 천상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래도 아담은 하느님과의 유혹 때문에 먹지 않으려고 했다. 아담은 하느님과의 약속 때문에 먹지않으려 했다.

아담이 사랑한 필생의 한 여자, 이브의 유혹에 그만 넘어간 것이다. 지금도 남자는 여자의 유혹에는 약하지만 사모로 가슴을 울리는 건 또 그 남자라는 것이다.

내 뼈로 만든 여자이기 때문에, 나를 만들어준 남자이기 때문에, 공존할 수밖에 없는 죄의 영향권에서 오늘도 나는 사모한다. 내 사랑 아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