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고촌도시계획도로 모습.

풍경이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했던 천등고개길은 이제 폭풍의 언덕길이 되고 만 느낌이다. 나는 지나간 여름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연상되는 것이 하나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이다.

지난 8월 시청 앞에서 열린 한화 아파트 시위 현장에서 연설중인 최기호 씨.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은 바가 있었지만 몇 년전 영국을 여행 하면서 이 소설을 쓴 작가의 고향 마을과 배경이 되는 지역을 답사 한 바 있다. 

에밀리 브론테가 자라난 곳은 영국 중북부에 위치해 있는 요크셔 주 하워스라는 소도시이다. 도시 중앙에 위치해 있는 공원을 지나 언덕바지 길을 따라 올라가면 1800년대에 지어진 영국 국교회가 나오고 그 예배당 안에는 에밀리 브론테의 무덤이 있다.

에밀리는 국교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오게 되었고 1847년 이 소설을 완성하여 이곳에서 발표한 후 1848년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교회당 앞에는 지금도 에밀리가 살았던 목사관이 있고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푹풍의 언덕으로 통하는 무어(Moore)지대가 나온다. 끝없이 펼쳐진 히스길을 걷다보면 보랏빛 꽃의 파도가 환상의 세계 속으로 인도하는 것만 같다. 

이곳을 배경으로 씌여진 이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18세기 말경 이 폭풍의 언덕에 안쇼라고 하는 부유한 한 농부가 살았다. 그에게는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이 있었는데 어느날 리버풀에 갔던 안쇼는 고아로 버림받은 한 남자 아이를 데려다가 히스클리프라 이름 짓고 친자식과 같이 키운다.

이 고아는 입양된 후 캐서린과 함께 자라면서 캐서린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얼마간 세월이 흐른 후 안쇼가 죽게 되자 안쇼의 아들 힌들리는 이 고아출신 형제를 머슴신분으로 강등시키고 학대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캐서린 마저 근처의 지주 린튼가의 아들 에드거와 결혼하게 되자 히스클리프는 집을 나간다. 그 후 그는 복수를 결심하고 3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와 힌들리를 파멸로 몰아넣고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을 무식한 머슴으로 타락시키고 에드거의 여동생 이자벨라를 유혹하여 결혼하지만 그는 아내를 학대함과 동시에 처남댁이된 그의 첫사랑 캐서린을 계속 연모한다.

그러나 캐서린은 딸을 낳다 죽고 그의 딸 캐서린이 자라나 후에 히스클리프의 아들 린튼과 결혼함으로 히스클리프는 이 황야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그는 평생 캐서린의 망령에 시달리다 죽게 되고 그의 아들도 죽게 된다. 결국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과 린튼의 아내 캐서린 사이에 친밀감이 감돌게 됨에 따라 폭풍의 언덕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작품을 소개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안쇼의 도덕적인 면과 그의 아들 힌들리의 부도덕함이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에드거 린튼의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면과 히스클리프의 야만성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히스클리프의 악마적 야만성은 안쇼의 아들 힌들리의 비인간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처사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이 언덕에는 증오와 복수의 폭풍이 불어 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은 지난 8월 8일 한화 아파트 주민들이 시청 앞 시위도중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려는 모습.

우리는 천등고개가 폭풍의 언덕으로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폭풍을 넘어 평화가 깃들이는 마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을빛 아래 평화롭던 하워스 마을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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